삼성-현대차, 자동차시장 '오월동주(吳越同舟)' 되나

by임성영 기자
2016.11.16 13:02:21

삼성전자, '하만' 인수.. 자동차산업 본격 진출선언
현대차, 하만 카오디오 장착.. 삼성과 협력사 관계로

[이데일리 이진철 임성영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글로벌 자동차 전장전문회사 ‘하만(Harman)’을 인수하면서 현대차그룹과 역학관계가 주목된다. 커넥티드카·전기차 등 차세대 자동차 시장에서 삼성과 현대차(005380)가 협력사로 한배를 타게 될지, 아니면 치열한 경쟁을 벌일지 국내 대표 1·2위 기업의 구도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이 인수한 하만 소유 브랜드는 JBL과 하만카돈(Harman Kardon), 마크레빈슨(Mark Levinson), AKG 등 프리미엄 오디오와 뱅앤올룹슨(B&O), 바우어앤윌킨스(B&W) 등 카오디오 브랜드 등을 총망라한다.

BMW의 최고 사양 모델인 7시리즈에는 바우어앤윌킨스(B&W) 시스템이 탑재되며, 벤츠 CLS에는 하만카돈 시스템, 아우디A8에는 뱅앤올룹슨(B&O)의 사운드 시스템이 탑재되는 등 글로벌 럭셔리 독일 3사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또한 도요타 렉서스에도 마크레빈슨 시스템이 탑재된다.

현대·기아차가 생산하고 있는 대부분의 차량도 하만이 생산한 오디오를 장착하고 있다.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EQ900에는 하만의 최고급 라인 렉시콘을 탑재하고 있고, 아반떼 이상급의 차량에도 역시 하만 브랜드인 JLB 제품을 쓰고 있다. 현대차가 기존에 하만과 해오던 거래관계를 끊지 않는다면 삼성전자의 인수가 마무리된 이후 현대차는 삼성전자의 고객사가 되는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하만 인수로 전장산업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항상 열려 있는 자세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차의 공식적인 입장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삼성이 “완성차 진출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자동차산업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데다 전기차 등 미래의 경쟁 요소들이 삼성의 강점인 정보통신(IT)분야에서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이미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전기차를 선정하고 삼성SDI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사업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여파로 자동차 산업이 기존 내연기관 중심에서 컴퓨터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삼성의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졌다. 삼성SDI를 통해 2차 전지산업 육성에 몰두하고 있는 것도 결과적으로 전기차의 핵심 분야에서 경쟁력을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를 처음 개발할 때 삼성SDI 측에서 협업을 기대하고 접촉을 시도했지만 현대·기아차는 삼성과의 협력에 부정적이었다”면서 “삼성SDI도 현대·기아차와의 직접 협력을 거의 포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의 이번 하만 인수는 자동차산업에서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만은 막강한 브랜드 파워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시장 점유율 41%로 전장분야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재용 LI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이 스마트폰 제조를 통해 쌓아온 IT기술을 하만의 자동차 전장부품 기술과 결합할 것”이라며 “하만, 현대모비스, LG전자 등 자동차 전장회사는 결국 커넥티드카 시장을 목표로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경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세계 완성차시장 점유율 5위의 위상을 갖고 있지만 전기차 분야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미 구글 테슬라 등 전기차 분야의 선두업체들이 기존의 자동차 산업과 무관한 점도 현대차를 긴장하게 하는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각종 IT업체들과 합종연횡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혼자서 모든 걸 다 하겠다는 고립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현대차는 미래 경쟁에서 상당히 불리한 여건에 있는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삼성그룹이 화학과 정유, 방산 등 일부 업종을 정리하면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핵심역량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선결작업을 진행해 국내 완성차업체들보다 전기차 등 미래 자동차시장에 집중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을 갖췄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하만 인수로 삼성은 전기차 제조 역량을 다 갖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지금은 완성차 시장에 진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앞으로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 충분히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들어가는 부품의 수가 절반 이하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다”면서 “현대차그룹만이 아니라 애플이나 구글 등도 삼성을 견제하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추가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FCA)의 자동차부품 자회사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를 진행한 바 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수순을 보면 삼성이 앞으로 자동차 구동이나 조작과 관련한 회사를 사들일 것”이라면서 “다음번엔 하만보다 더 큰 중요한 업체를 인수한다는 소식을 들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