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설명-사과-약속-촉구'로 복지후퇴논란 돌파

by피용익 기자
2013.09.26 16:33:03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내놓은 기초연금 축소 관련 입장은 예상보다 높은 수위의 사과를 담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동시에 야당과 여론 일각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반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복지공약 후퇴의 불가피성을 설명함으로써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한편 정치적 공세에는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다만 박 대통령이 임기 내 공약 실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점은 향후 또 다른 사과의 빌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재정 여건’을 단서로 달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법이 제시되지 않았고 증세 가능성도 열어두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박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 말미에 한 기초연금 축소 입장 표명은 ▲기초연금이 공약보다 축소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 설명 ▲공약 축소에 대한 사과 ▲임기 내 공약 실천 노력 약속 ▲세수 확충을 위한 정치권의 협조 촉구 등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18매다.

박 대통령은 원고의 가장 많은 부분을 공약이 축소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가장 먼저 이날 의결한 내년도 예산안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세수 결손 현상에 따른 예산안 편성의 어려움을 부각시켰다. 또 자신이 국회의원 시절부터 주장해온 기초연금 제도가 재정 여건 악화로 인해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전달했다. 아울러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기초연금이 최선의 대안이었다는 점을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그동안 저를 믿고 신뢰해주신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가 생겨서 죄송한 마음”이라며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사과 입장을 표명했다.

그동안 청와대 내부에선 야당이 제기하는 ‘공약 파기’ 주장은 정치적 공세라고 판단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유감 표명을 넘어선 사과를 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오히려 일각에선 “사과가 필요 없다”는 정면돌파론도 나왔다. 사과를 하면 공약을 파기한 것으로 비춰져 ‘신뢰와 원칙’의 이미지가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해서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날 국무회의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유감스럽다’ 또는 ‘안타깝다’는 표현이 나올 것으로 점쳤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입에서 ‘죄송’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적지않게 놀랐다는 후문이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국무회의 직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진정성과 진실을 담아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야말로 대통령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말씀 그대로 이해해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공약 축소에 대해 사과를 하고 이해를 구하면서도, 야당의 비판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특히 ‘공약 포기’ 주장에 대해선 “공약의 포기는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손해라는 주장에 대해선 “사실과 다르다”면서 “가입기간이 길수록 가입자가 받게 되는 총급여액은 늘어나서 더 이익이 된다. 어떤 경우에도 연금에 가입하신 분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받게 되도록 돼 있고, 연금에 가입해서 손해보는 분들은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치권을 향해 세수 확대를 위한 협조를 거듭 촉구한 것은 사실상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는 민주당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증세를 비롯한 재원 조달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공약 실천’을 재천명해 향후 경제 상황에 따라선 또 다시 사과를 해야 할 빌미를 남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의 사과는 이번이 세번째다. 지난 4월12일 민주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장ㆍ차관급 낙마사태에 대해 “인사와 관련해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방미 기간 윤창중 당시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발생하자 5월13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 드린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