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현아 기자
2013.04.29 18:59:20
재판부, 변호인 측 증인 채택 부정적..검찰에는 호의적
증언보다는 증거 요구..진실찾기 험로 예고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재판부가 최태원 SK(주) 회장 형제의 항소심 공판에서 변호인 측 증인의 증언 전반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보여, SK(003600) 그룹이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지난 4월 8일 항소심 첫 공판에서 최 회장 형제가 검찰수사 및 1심 법정에서 거짓진술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사죄하면서 재판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지만, 재판부는 증인들의 주장보다는 관련 문건 등 증거를 적시할 것을 요구했다.
1년 반 넘게 이뤄진 재판이 하루아침에 새로운 논리로 뒤바뀐 데 대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증거들이 대부분 정황 증거여서 진실을 가리는데 치열한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지방법원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 심리로 29일 열린 공판에서는 증인 신문 전에 변호인 측 증인을 채택할 지 논의했다. 변호인 측은 펀드분야 전문가인 은모 씨와 최 회장 선물투자를 맡았던 김원홍 씨(SK해운 전 고문), 그리고 김씨가 투자한 보험에이전트회사 대표 곽모 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은씨는 최 회장이 내수 산업 중심의 그룹 운영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펀드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다는 부분을, 김씨는 이 사건 450억 원 횡령금의 사용주체로, 곽씨는 횡령금 일부가 사용된 회사의 대표 자격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어떤 직원(은씨) 멘트 만으로는 이 펀드가 정상적이었다고 보기에 적절치 않고, 곽씨에 대해서도 김원홍 씨가 안 나타나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보류시켰다.
변호인은 “김원홍 씨의 소재를 파악해 전달하겠으니 출두명령을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김원홍씨의 증인채택을 보류하지는 않았지만 “연락이 되느냐”면서 못 미더워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문용선 판사는 “(SK계열사들이) 펀드에 투자한 것은 여러 자료들이 많지 않느냐”면서 “중요 전제 사실이 아니라면 증언만으로 뭘 할 수 있을지 아주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재판부는 검찰이 요구한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의 증인 채택에 대해서는 받아들였고, ‘증인 진술의 신빙성’을 중심으로 진행된 검찰의 증인 반대신문에서도 변호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검찰측 질의를 수용했다.
이날 법정에는 HK저축은행 임원 강모 씨와 2008년 당시 SK홀딩스 법무실장(SK에너지 임원 겸임)으로 재직했던 김모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강모 씨는 2008년 당시 최태원 회장에게 대출해 준 경위를 설명하면서, SK C&C 주식을 담보로 하고 최 회장의 높은 신용때문에 1인 기준 최대금액인 80억 원을 대출해 줬다고 증언했다. 당시 리먼사태 속에서 저축은행들은 수익성 강화를 추구했고, 우량고객의 대출 유치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려 했다는 말도 부연했다.
김모 전 SK홀딩스 법무실장은 “SK에너지가 베넥스 펀드에 투자할 때 에스크로를 걸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면서 “나중에 최 회장에게 (450억 원이 중간사용됐다 갚아진걸) 보고했을 때 최 회장이 ‘당시 에스크로했다고 하지 않았냐’면서 당황해 했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의 증언을 종합하면, 최 회장의 재산상태는 나쁜 게 아니어서 횡령할 필요가 없었고 펀드 구성 사실은 알았지만, 450억 원 횡령은 알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재판부는 “(450억 원 횡령 사실을 알았을 때) 왜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를 횡령으로 고소하거나 민사소송하거나 SK그룹 자금을 빼지 않았냐”면서 “직접 증거가 없다는 것은 증거방법이 없다는 것이고, 이는 증거가 없다는 의미”라고 잘라 말했다.
또 “항소심에서 얼마나 새로운 증거가 있겠냐마는 검사나 변호인이 잘해야 한다”며 “말로 하는 재판이 아니니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적시해 오라”고 요구했다.
변호인 측은 “유죄의 증거는 검사에서 하는 것인데 전면적으로 무죄의 증거를 요구하신다”며 “간접사실에 대한 다양한 증거 기회를 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다음번 재판은 5월 10일 오후 2시 30분 서울지방법원 403호 소법정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