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최정희 기자
2014.04.16 14:49:55
"역사적으로 하반기 환율이 더 낮아"
외환딜러의 철칙 "시장과 싸우지 말고, 시장을 읽어라"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컴퓨터 수십 대가 뿜어내는 열기로 사무실 공기는 후끈했다. 잠깐만 앉아있어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듯 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피 튀기는 승부가 펼쳐지는 곳, 류 부장이 일하는 곳이다. 지난 주 달러-원 환율이 5년 8개월 만에 1050원 밑으로 하락하고, 장중 환율이 이틀 새 20원이나 떨어졌다(원화 강세). 그 주 마지막 승부가 있었던 11일, 서울 중구 다동 씨티은행 본부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최근의 환율 하락세에 대해 “현재 환율이 5~6년 전으로 회귀한 것”이라며 “거꾸로 얘기하면 비교적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상수지 흑자가 최근 2~3년 크게 증가됐고, 외국인 자금이 순유입으로 바뀌는 등 환율 하락요인이 많았다. 하지만 1050원이 계속 지지되면서 ‘1050원이 지켜질 것’이란 믿음이 행동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시장에선 외환당국이 1050원을 지키려했다는 추측이 지배적이지만, 그는 “(외환당국이) 언제 얼마나 막았는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대외적으로 1050원 아래로 테스트할 때마다 미국 테이퍼링 및 기준금리 인상 이슈,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 불안, 북한 등 지정학적 위험 등의 악재가 하락을 막아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악재들이 지속되면서 시장이 피로감을 느꼈고, 그 만큼 반응이 둔해졌다.
그는 “외국인들도 (달러를) 사는 쪽보다 파는 쪽이 많다”며 “주식, 채권으로 자금유입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원화 강세에 대한 기대가 많아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머징마켓이나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에 원화가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을 것이란 판단이 컸다. 그로 인해 외국인들은 원화를 팔았지만, 최근 들어 반대로 원화를 사면서 오버헤지된 부분을 해소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는 “1050원이라는 심리적 지지선이 무너지면 반대로 그 레벨 정도가 저항선으로 작용한다”며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달 거주자 외화예금은 석 달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환율이 하락하면 좋겠다는 사람들보다 올라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달러를 팔 물량이 그 만큼 많단 얘기다.
그는 “역사적으로 봐선 상반기 환율이 90% 이상 하반기보다 높았다”며 “경상수지 흑자는 3월이 지나면서 더 회복되고, 투자자 입장에서도 상반기보단 하반기에 더 적극적이라 자금유입 여력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하반기에 미국 기준금리 인상 이슈가 본격화되더라도 별로 빠져나갈 자금이 없다.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회복을 전제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원화는 안전자산일까. 지난해 초부터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이러한 질문이 심심찮게 나온다. 원화는 흔히 ‘프락시(proxy) 헤징 통화’ 또는 ‘이머징 마켓의 리딩 커런시’로 불린다. 이머징 통화를 거래할 때 위험을 줄이기 위해 비슷하게 움직이면서도 유동성이 풍부한 원화를 교차 헤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과거 원화의 변동폭을 키우는 원인이 됐었다. 원화는 달러 유동성이 다른 이머징 통화에 비해 좋지만, 외부 충격이 있을 때는 이머징 통화와 함께 약세로 간다. 유동성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매도되고, 변동폭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대외 여건이 악화됐지만 변동폭 자체가 좁아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 만큼 원화 체력이 단단해졌다는 것.
그는 “원화를 매도하고 달러를 매수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 이런 거래 패턴이 실패했다”며 “가장 크게 실패했던 것이 지난해 8월(미국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이머징 통화가 약세를 보였으나 원화는 비교적 흔들림이 적었다). 올 2, 3월에도 달러 매도, 원화 매수했던 역외 세력들은 다 손해를 봤다”고 밝혔다. 그는 “원화는 시장 변동성, 자산 안전성 등을 보면 이머징 국가와 선진국 사이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급격한 환율 하락에 성공적인 베팅을 했을까. 그는 “상당한 공방을 거치면서 1050원 밑으로 갈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쉽게 하락했다”며 “그런 부분에 있어선 적극적으로 환율 하락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트레이더에게 돈을 벌고 못 벌고 보단 얼마나 뷰 테이킹(view-taking)을 했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