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현대건설 매각이 꼬이는 이유

by이진우 기자
2010.12.02 16:50:55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 현대건설(000720) 매각 게임이 저렇게 시끄러워진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정책금융공사의 실수다. 현대그룹의 자금 출처에 대해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우선협상 대상자를 현대그룹으로 결정하도록 한 것은 어떤 변명을 들고 와도 납득하기 어렵다.

정책금융공사와 외환은행은 둘 다 현대건설 지분을 파는 입장이지만, 외국계 자본이 최대주주인 외환은행은 최대한 비싸게 파는 게 목적인 반면 정부 산하기관인 정책금융공사는 제대로 된 회사에 팔아서 뒤탈을 줄이는 게 중요한 조건이다. 자칫하면 자기들이 또 돈을 쏟아부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때 돈의 출처나 조건을 확인하도록 선정 기준을 명확하게 했어야 하는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기준을 부실하게 정해놓고 뒤늦게 이것도 봐야 하고 저것도 봐야 한다고 소리 지르는 모양새다. 
 
객관식으로 문제를 출제해놓고 합격자 발표도 다 끝났는데 우연히 찍어서 맞춘 게 아닌지 문제 풀이 과정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문제 풀이과정을 확인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럴 거면 애초에 문제를 주관식으로 냈어야 했다는 얘기다.
 

▲ 현대건설 우선협상자로 현대그룹을 선정한 다음날 현대그룹이 각 일간지에 낸 자축 광고다. 그 뒤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당시의 심사 결과는 광고 문구처럼 `진심으로 감사드리`기엔 다소 섣부른 결정이었다는 지적이다.


현대건설 매각 이슈를 산으로 끌고 올라가는 두 번째 요인은 금융감독당국으로 표현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보이지 않는 그 손을 보이지 않게 만든 `룰의 부재(不在)`다.

현대건설을 아무 데나 돈 많이 준다는 곳에 팔아서는 안된다는 게 국민적 합의라면 현대건설 매각을 사인(私人)간의 거래라는 이유로 방치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겉으로는 민간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면서 물밑에서는 입김을 불어넣는 이중 플레이를 펼치는 정황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러는 바람에 일이 더 꼬인다.
 
현대건설 문제를 요약하면 `출자금 회수`가 제 1목표인 채권단에게 `승자의 저주` 문제까지 챙기라고 하는 바람에 생기는 사단이다. 과자를 사러 온 아이에게 그 돈이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고 확인한 후에 팔라는 얘기인데 그건 부모가 챙겨야 할 문제지 가게 주인의 몫은 아니다.



승자의 저주를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정부가 권한을 갖고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면 DTI(총부채상환비율)규제가 그런 룰이다. 생각해보면 DTI 규제는 더없이 반시장적인 규제다. 대출을 받는 사람도 불만이고 대출을 해주는 은행입장에서도 불만이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겠다는데, 이자는 어떻게서든 갚겠다는데 정부가 왜 돈을 못 빌리게 막느냐는 얘기다. 돈을 빌려주는 은행도 담보가치가 충분하니 이자가 연체되면 아파트를 처분하면 되는데 그 좋은 장사를 못하게 하니 속이 쓰리다.

이런 사인(私人)간의 거래에 정부가 나서서 DTI규제를 내세우면서까지 훼방(?)을 놓을 수 있는 이유는 무리한 대출과 그에 따른 부동산 가격 급등이 국민경제 전체로 볼 때 좋을 게 없기 때문이라는 사회적 합의 때문이다. 왜 이런 룰을 개인들의 아파트 구입에는 적용하면서 기업들의 M&A에는 적용하지 않을까.

그런 룰을 사전에 만들지 못하고 있다가 일이 닥치니 뒤에 숨어서 조종할 수 밖에 없게 된, 스스로 고약한 모양새를 자초한 것은 정책당국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현대그룹의 자금 출처를 따져야 한다는 여론도 일견 옳아보이지만 한걸음 들어가면 매우 비현실적인 목소리다. 현대그룹이 프랑스 은행이나 동양종금증권에서 돈을 구해온 조건을 공개하더라도 그 조건이 위험한 조건인지, 괜찮은 조건인지 판단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연 12%의 금리로 빌렸다고 가정한다면 그게 현대그룹이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인지, 감당할만한 조건인지 누가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게 10%나 15%라면 판단하기 쉬워지는가. 주당 얼마의 풋백옵션이 현대그룹이 감당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지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이런 논란이 생기는 이유는 위험의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현대그룹 자신 뿐인데 그걸 제3자가 판단하겠다고 나서고, 제3자가 판단하라고 주변에서 부추기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이 자금출처와 조달조건을 깨끗하게 공개하면 그만이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아보인다. 이미 대출금이라고 밝힌 상황에서 더 구체적인 공개를 머뭇거리는 이유는 승자의 저주 가능성을 판단하는 잣대와 기준이 구체적이고 명확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본적으로 따져 보면 M&A 자금을 대는 계열사의 주주들 입을 막아놓아 총수의 독단을 가능하게 만든 현행 상법규정이 문제의 출발이다. 그리고 승자의 저주를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나눠 부담해온 우리의 관행이 문제의 논리적 해결을 막고 있다. ☞관련 기사 [기자수첩]재벌총수가 UFO를 사겠다고 우긴다면 

현상의 문제는 대부분 제도나 관행의 결함에서 나온다.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돈을 걷어서 현대건설을 인수하는 게 괜찮은 지 계열사의 주주들이 판단하고 책임지도록 하는 게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게 만드는 첫 단추다.

승자의 저주를 오로지 승자의 부담으로 떠넘기기 어려운 구조라면 그 저주를 피해갈 사회적 룰을 먼저 만드는 게 두 번째 단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