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올리니 근로자 월급 줄었다`…법인세 개편 필요성 제기
by이명철 기자
2021.09.23 15:24:35
조세연 “법인세 한계세율 10% 늘면 임금 0.27%↓”
“대기업 위주 세부담 늘수록 취약계층 등 부담 커져”
정부 “법인세 실효세율 높지 않아”…인하 신중 입장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우리나라 기업들의 법인세가 늘어날수록 노동자의 임금은 줄어드는 일명 부담 전가 효과가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 사옥.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영업이익 12조 57000억원을 기록하는 등 실적 호조를 이어가며 국내 법인세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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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는 국내에서 걷는 대표 세수 중 하나로 재원 조달 차원에서 중요하지만 다른 경제주체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실효세율 인상 같은 조세 정책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다만 법인세를 낮춘다 해도 근로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도 미지수인 만큼 종합적인 정책 검토가 요구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3일 발표한 조세재정브리프에서 김빛마로 부연구위원은 ‘산업별 변이를 활용한 법인세 부담의 귀착효과 분석 연구’ 보고서를 통해 “국내 기업들은 한계적 법인세 부담이 증가할 경우 일부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해당 보고서는 조세의 실질 부담이 어느 주체에게 귀속 되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법인세는 소득세, 부가가치세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세목 중 하나로 고용·투자·연구개발(R&D) 등 정책 수단으로 활용되는 주요 세금이다.
다만 개인이 아닌 법인격을 과세 대상으로 삼아 실질 세금 부담을 지는 경제 주체가 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착안해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분석 결과 국내 기업들은 법인세 한계세율이 10% 오를 때 임금 수준은 0.2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기업의 법인세 한계실효세율이 10%에서 11% 증가하면 소속 근로자들의 임금은 0.27% 줄어든다는 의미다.
시장 구조가 독점적인 형태일수록 기업이 근로자와의 협상권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경향이 커서 법인세 전가 효과가 더 컸다. 법인세 한계세율이 10% 오를 때 시장 집중도(독점 구조)가 4분위(상위 25%)인 경우 임금 수준은 0.54% 줄어든 반면 1분위는 0.45%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력 비중이 높은 노동집약적 산업과 기간제 근로자(파트타임)가 많은 업종일수록 기업의 법인세 부담 전가 현상이 더 명확한 것으로 조사됐다.
| 시장 집중도에 따른 법인세 귀착효과 비교. (이미지=한국조세재정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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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사를 통해 기업들이 부담에 직면하면 상대적으로 취약한 근로자 그룹의 임금 수준을 감소하는 경향이 관측된 만큼 제도적으로 법인세 실효세율을 증대하는 정책 방향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제안했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임기 첫해인 2017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 올리는 등 법인세를 지속 강화하는 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올해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8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2017년(19위)과 비교하면 11계단이나 올랐다.
기업들의 실적 호조와 맞물려 법인세수도 크게 늘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국세 중 법인세는 지난해 55조5000억원에서 올해 65조5000억원으로 늘어나고 내년 73조8000억원으로 지속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조세연의 보고서 내용대로라면 이들 기업이 낸 법인세 중 일부는 근로자들의 임금 삭감분까지 포함된 셈이다.
다만 현재로서 법인세 인하 등을 논의하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이 25%지만 103개 기업만 해당하고 99%가 법인세율 20% 미만을 적용받고 있다”며 “법인세 실효세율이 높지 않아 인하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기재부 관계자도 “현재 우리나라 법인세 실효세율이 해외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높지 않은 상황”이라며 “법인세 인상은 물론 인하 등에 대해서도 검토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 OECD와 한국의 평균 법인세 최고세율 추이. (이미지=한국경제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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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김 부연구위원은 “실효세율 절대 수치가 높은 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5~7년 간 대기업 위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며 “R&D 등 대기업 위주로 조세 지출 혜택도 줄이면서 대기업 위주 세부담은 늘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의 세부담이 늘수록 근로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커지는 만큼 단순히 매출·이익 규모별로 세율을 매기는 것이 안인 기업별 특성에 맞춘 조세 정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큰 이익을 보는 대기업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조세 정의상 부합할 순 있겠지만 세금 부담이 취약계층 등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며 “다만 세금을 인하한다고 반드시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기 때문에 종합적인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