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家 상속분쟁, 소송 취하만이 답인 이유[생생확대경]

by이준기 기자
2023.11.22 14:58:43

[이데일리 이준기 산업부 차장] 지난 16일 오후 서울서부지법 제11민사부 410호 법정.

재판장인 박태일 부장판사는 이날 열린 LG가(家) 상속회복청구 소송 2차 변론기일 증인신문을 마친 뒤 원고인 고(故) 구본무 전 LG그룹 선대회장의 부인인 김영식 여사 및 두 딸과 피고인 구광모 LG그룹 회장 간 조정을 제안했다. “시간상 제약이 있으며 변론에 대한 심증 형성의 문제 때문에 원고와 피고 대리인들이 자유롭지 않고 재판부 또한 자유롭지 않다”는 이유를 댔다.

재판장의 발언 중 법조계·재계가 주목한 대목은 ‘심증 형성의 문제’.

이를 두고 김 여사 및 두 딸, 즉 세 모녀가 뚜렷한 증거 없이 녹취록이나 증인 신문을 통해 여러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재판부 역시 이에 대한 사실 판단이 쉽지 않다는 뜻을 내비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로 재계 관계자는 “이날 원고 측은 지난 1차 변론기일과 마찬가지로 증인 신문을 통해 유리한 증언만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며 “그 과정에서 판사가 질문을 중단할 정도로 LG그룹은 물론 가족 간 예민한 문제들이 거론됐고 위험 수위를 넘나들었다”고 했다.

따라서 구 회장은 재판부의 조정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먼저 구 회장으로선 세 모녀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기가 어렵다. 이미 양측은 2018년 재산분할 당시 수차례 논의 끝에 합의서를 작성했음에도 세 모녀는 4년이 지난 시점에 이를 번복했다. 더 나아가 ‘재산을 다시 처음부터 분할하자’고 소송까지 제기했다. 어느 누구라도 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들과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긴 어려울 거다.

둘째 국내 대표기업인 LG 수장으로서 리더십을 공고히 하려면 어느 정도 진실이 가려질 필요도 있다. 올해 2월 세 모녀가 소송을 제기하며 ‘기망을 당했다’는 표현을 지속적으로 쓰고 있는 데다 변론 기일 중엔 금고 개방, 유언 메모 폐기 등을 언급하며 마치 구 회장이 부정한 방법으로 기업을 승계받은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조정에 나설 경우 그룹을 지속적으로 경영해야 하는 구 회장의 리더십 훼손은 불 보듯 뻔하다.

셋째 조정을 거쳐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세 모녀가 앞으로 구 회장을 흔들 공산이 아예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세 모녀는 이번 소송 목적이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는 기존 주장과 배치되는 발언을 내놓은 게 이를 제대로 보여준다.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김 여사는 “우리가 지분을 찾아오지 않는 이상 주주간담회에 낄 수 없다. 연경(장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이가 아빠(고 구본무 선대회장) 닮아서 전문적으로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연경이나 내가 자신 있게 잘 할 수 있다. 다시 지분을 좀 받고 싶다. 경영권 참여를 위해 지분을 받고 싶다”고 했다.

조정이 쉽지 않은 이상 세 모녀의 소송 취하로 끝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게 재계 전반의 분석이다. 지금은 미·중 패권경쟁에 따른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등 글로벌 대변혁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점이다. 우리 산업계가 세계 시장을 선도하느냐 도태되느냐에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 대한민국 대표 기업의 총수가 이런 일로 발목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