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왜 심심?” 읽고 이해하는 ‘실질 문해력’ 또 논란
by권효중 기자
2022.08.23 15:54:25
‘심심한 사과’ 의미 오해로 해프닝
“금일(今日), 금요일인 줄” 등 유사 사례 반복
성인 3명 중 1명 “신문·TV 속 단어 몰라 자주 곤란”
“한자 많은 한국어, 사전 검색 습관 필요”
[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사과를 해야 할 때인데 심심하다니…”
최근 한 콘텐츠 업체에서 웹툰 작가의 사인회 행사를 추진하던 중의 오류를 사과하는 과정에서 ‘문해력 논란’이 불거졌다. 성인들 가운데서도 한자어 등이 섞인 표현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어 벌어진 일종의 해프닝으로, 최근 들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해를 피하기 위해선 단어 뜻을 스스로 찾아보는 습관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콘텐츠 관련 행사를 준비하던 한 카페는 지난 20일 웹툰 작가의 사인회 행사 예약 관련, 오류를 사과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트위터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사과문 중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한자 표현인 ‘심심(甚深)하다’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의미인 ‘심심하다’로 잘못 이해한 이용자들이 항의를 했다. 이들은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때 심심하다고 하다니” 등의 의견을 남겼고, ‘심심하다’의 원 의미를 알려주는 다른 이용자들에게도 “모두가 알 수 있는 단어를 썼어야 한다”며 반박하기도 했다. “이러다 화내시는 마음 십분 이해합니다,라고 하면 고작 10분 이해하냐고 할 듯” 등 비아냥대는 반응도 올라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심심한 사과’ 외에도 한자어가 포함된 단어 등 이해에 혼선을 빚은 사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 대학교에서 과제 제출 일자를 ‘금일(今日)’로 공지하자 ‘금요일인 줄 알았다’고 주장한 경우 등이다. 3일간을 의미하는 ‘사흘’의 ‘사’를 숫자 ‘4’로 받아들여 ‘4일인 줄 알았다’고 주장한 경우는 온라인포털 실시간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 등에 익숙한 2030세대들 사이에서도 맞춤법, 기본적인 단어 이해 등 문해력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직장인 A(33)씨는 “사직서 ‘수리(受理)’를 고치다는 의미의 ‘수리(修理)’로 이해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물어본 동료가 있었다”며 “스스로 뜻을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는데 황당했다”고 했다. 다른 직장인 조모(28)씨는 “한자 교육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문화가 익숙한 상황에서 개인에게만 화살을 돌릴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단어와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실질 문해력’에 대한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립국어원이 2020년 만 20~69세 성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언어 의식 조사에서 36.3%가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말을 의미를 몰라 곤란했던 경험이 있냐”는 질문에 ‘자주 있다’고 답했다. 2015년 조사 당시 5.6%에 불과했던 것이 5년 만에 6배 가깝게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주원인으로는 한국어 단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자어에 대한 교육 부족이 꼽히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0년 제7차 교육과정 이후 한문은 의무 교육에서 제외됐으며, 초등학교 교과서의 한자 병기 정책 등도 폐기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한자어를 습득할 기회는 많지 않다.
이에 전문가들은 일상에서 뜻을 명확히 모르는 단어의 사전 검색 습관들이기, 독서 등으로 한자를 포함한 단어들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영어를 배울 때 어근을 학습하는 것처럼 한국어 단어도 한자를 익히면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며 “단어의 뜻, 발음방법 등을 모르는 경우 평소에 스스로 검색해보고, 정리해두는 습관을 들이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