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공공기관 절전 워크숍

by안혜신 기자
2013.06.03 16:24:24

[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더운데 재킷 벗고 앉으시죠.”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기술센터.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재로 열린 ‘하계 절전대책 관련 공공기관 워크숍’이 열렸다. 창문조차 없는 밀폐된 공간에 150여 명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휴일인 일요일 긴급 소집된 관계자들은 연신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훔쳤다. 회의 시작 때 28도를 맴돌던 수은주 눈금은 윤 장관의 모두발언이 진행된 불과 5분여 만에 30도를 넘었다. 더위를 견디다 못한 참석자들을 위해 차가운 생수가 공급되기도 했다.

때마침 사회자가 상의를 벗어도 된다는 발언을 내놓자 참석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벗었다. 원전 가동중지에 따른 절전 대책과 이에 따른 따가운 국민 여론으로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편히 켤 수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

한 참석자는 “에어컨을 켜면 또 켰다고 얘기 나올 테고 별수 있겠습니까?”라며 넋두리를 했다.



최근 산업부는 위조된 부품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진 원전 3기의 가동 중단과 이에 따른 최악의 전력난 우려로 집중포화를 받고 있다. 이에 윤 장관은 지난달 29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기공식 행사를 끝내자마자 급히 귀국했다.31일에는 전력 대책을 발표했고 공공기관과 재계 인사들을 연이어 만나며 절전을 당부하고 있다. 국민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절전에 동참해달라고 읍소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로 원전 가동이 중단됐는데 국민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촌극이기 때문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전력난과 이를 국민에게 떠넘기는 태도로 이미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를 의식하듯 이날 워크숍을 마치고 나온 윤 장관의 표정은 어두웠다. 전력 대책과 관련된 기자의 모든 질문에 “담당 실장에게 물어보라”는 말만 남기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윤 장관은 최근 공식적인 자리에서 국민을 뵐 낯이 없다며 연방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하지만 이미 눈덩이처럼 커져 버린 정부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