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섭의 정치엔터테인먼트] 박근혜와 시나리오 전략 - 2

by강한섭 기자
2013.03.25 17:59:16

강한섭 서울예술대교수

세상만사는 모두 여의치 않다. 그저 되는 것은 없으며 뜻 한 대로는 더욱 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만 세상살이가 힘든 게 아니다. 권력자는 세상사를 마음대로 쥐었다 풀었다 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 내각 구성도 끝내지 못했으며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지지율 급락으로 비틀거린다. 정치 개혁의 상징이었던 안철수씨는 보궐 선거에 출마 선언하면서 벌써 구태 정치 행태를 보인다고 손가락질 받고 있다. 대중의 환호 속에 권력을 얻으면 자신이 세상을 통제한다는 턱없는 자신감에 취하게 된다. 그러면 세상사는 더욱 꼬이고 난감해 진다.

시나리오란 원래 특별한 경치나 조망을 뜻하는 어원에서 출발하여 연극과 영화의 장면이나 사건을 뜻하게 된 신(scene)의 결합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시나리오는 각기 개별적인 특별한 사건들을 시간의 축 위에서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연결하는 기법을 가리킨다. 즉 시나리오는 플롯을 짜는 것 바로 멋진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장편영화 상영시간 120분을 1:2:1의 분량을 가진 세 개의 막으로 나누고 인과법칙으로 엮어진 인상적인 장면들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장편 극영화의 상영시간 120분 보다 훨씬 엄격한 5년이라는 시간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그 한계 시간 동안 언어와 영상의 전략으로 국민이라는 냉정한 관객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가 시작하면서 주인공의 욕망을 하나의 개념으로 구체화한 다음 관객들의 시선을 낚아 챌 갈고리를 던져야 한다. 박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보수 개혁가’로 자신의 성격을 인물화하고 ‘경제 민주화’와 ‘창의’를 그 실천 원리로 삼았어야 했다. 그래야 멋진 장면을 하나의 형태로 꿸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 민주화’ 담론은 구석으로 쫓겨났으며 내각은 올드 보이들과 무명씨들로 채워졌다.



지지율이야 오르고 내리는 것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다. 대선에서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지금 찜찜한 기분 정도지만 야당 후보에게 표를 준 시민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강화하면서 재결집하고 있다. 임기 초반인데 대통령의 이미지가 ‘정의’, ‘개혁’, ‘희망’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맞이한 첫 번째 정치적 위기의 정체다.

그래서 대통령은 지금 시나리오를 다시 써야 한다. 시나리오는 없고 오직 외통수 로드 맵만 구비했다면 과감히 폐기해야 한다. 로드맵은 말 그대로 도로 지도로서 정책 입안, 실행 그리고 평가라는 평면적이고 단선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써야하는 시나리오는 정치적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시뮬레이션 시나리오다. 그런데 현상은 수많은 변수와 층위를 가지는 복잡계 속에서 발생하여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 시나리오는 극단적인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으로 다층적인 입체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1998년, 2003년 그리고 2008년의 초봄의 길목에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5년의 청사진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나리오는 대부분 실패했다. DJ는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지만 그의 민주당은 역사 속에 사라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사 정리와 개혁 입법’으로 싸웠지만 ‘왼쪽 깜박이 켜고 우회전 한다’는 비판을 지지자와 비판자 양쪽으로부터 들어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 분투했지만 결국 ‘특권’과 ‘부패’의 덫에 갇히고 말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으로부터 시작하여 할리우드 영화에 이르기까지 24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극작 이론이 똑같이 강조하는 것은 초기 설정의 중요성이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