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파격제안…"서울대, 지역별 학생수 비례로 정원 배정"
by장영은 기자
2024.08.27 14:00:00
한은,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
"현 입시, 사교육부담·불평등심화 등 구조적문제 유발"
부모 소득·거주지 차이가 상위권대 진학률 결정
"지역별 학생수 비율 반영하되 전형방법은 자율에"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서울 상위권 대학 선호→ 입시 경쟁 과열→ 사교육비 부담 가중→ 부모 소득에 따른 교육불평등 심화→ 수도권 인구 집중→ 서울 집값 상승→ (주거비를 포함한) 양육비용 증가→ 저출산’
어느 부분이 시작인 지도 모호하다. 원인과 결과가 반드시 하나로 귀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 현상과 문제들이 서로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만큼은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한국은행이 이같은 ‘악순환’을 만드는 주범으로 과도한 교육열을 지적하면서, 여기서 빠져나가기 위해선 현 입시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역별 학생 수를 반영해 대학 신입생을 뽑는 ‘지역별 비례선발제’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지난 6월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종로학원, 2025 대입전략 설명회’에서 학부모 및 학생들이 입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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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27일 BoK이슈노트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이란 분석 보고서를 냈다. 중앙은행이 왜 입시제도 개편에 대한 정책 제언을 내놓느냐는 질문에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이동원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장은 “입시 경쟁 과열이 우리나라의 구조적 사회문제를 유발한다”며 “이러한 문제들은 사회 전반의 안정과 성장 잠재력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이를 완화하기 위한 대응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입시 경쟁 과열이 낳은 가장 직접적인 문제로는 우선 사교육비 증가에 따른 가계 부담을 들 수 있다. 2007년부터 2023년까지 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참여학생 기준)는 연간 4.4%(실질기준 2.1%) 증가했다. 사교육을 포함한 교육비는 지난해 국내 가계소비지출의 22.5%로 가장 비중이 컸다. 특히 서울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 대비 1인당 사교육비 비율이 27%를 넘는다. 2명 이상의 자녀를 키운다면 산술적으로 가계 소득의 절반이 넘는 돈이 사교육에 들어가는 셈이다.
사교육은 그 자체 비용 뿐 아니라 주거비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도 지목됐다. 사교육 환경과 상위권대 진학률이 우수한 소위 ‘학군지’로 이사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면서 수도권으로 인구가 몰리고 서울 주택가격이 급격히 올랐다. 이같은 경제적인 부담 증가는 젋은층이 결혼 시기를 늦추고 출산 역시 ‘다시 생각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입시 경쟁의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마음 건강도 심각한 문제다. 학업부담으로 삶에 대한 만족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서울대 입학생 중 재수생 비중이 2013년 14.9%에서 2024년 26.9%로 증가하는 등 대학생의 노동시장 진입을 늦어지고 있다.
| 한국교육 종단연구는 2005년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학생들을 1년마다 추적 조사. (자료= 한국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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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문제 중에서도 한은이 가장 주목한 것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대물림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교육비 부담이 가중되고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사교육이 발달하면서 부모의 소득수준과 거주지역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교육의 양과 질이 다르게 됐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것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보면 한달 소득 8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 부모가 고교생 자녀 한명에게 쓰는 월평균 사교육비는 97만원이었다. 월소득이 200만원이 안 되는 가정에서 한달 자녀 교육비로 38만원을 쓰는 것과 비교하면 2.6배 수준이다. 지역별 차이도 컸다. 작년 고교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서울이 읍면지역보다 1.8배 높았다.
소득수준과 거주지역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는 상위권대 진학률 차이로 이어졌다. 특히 ‘서울 출신 쏠림현상’이 나타났다고 이 실장 등은 지적했다. 2010년 부모가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고3)의 상위권대 진학률은 하위 20%보다 5.4배 높았다. 거주지역별로는 2018년 서울 출신은 전체 일반고 졸업생 중 16%에 불과하지만, 서울대학교 진학생 중에서는 32%를 차지했다. 전체 일반고 졸업생 중 4%를 차지하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출신 학생은 서울대 진학생 중 12%에 달했다.
실제로 한은이 분석한 결과 2010년 소득에 따른 상위권대 진학률 격차 중 75%는 ‘부모 경제력 효과’ 때문인 것으로, 2018년 서울과 비서울 간 서울대 진학률 격차 중 92%는 부모 경제력과 사교육 환경 등을 포괄하는‘거주지역 효과’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밖에도 대학 신입생의 특정 지역 편중으로 대학 대 교육적 다양성이 부족해지는 점도 문제라고 짚었다. 지역적 다양성 부족이 대학 내 창의성, 문제해결능력, 포용성 등의 교육적 토대가 약해지는 요인이 될 수 있어서다.
| 학생 잠재력은 중학교 1학년 수학 성취도 점수 등 사용. (자료= 한국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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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입시제도의 대안으로 한은이 들고 나온 것은 지역별 비례선발제다. 대학이 자발적으로 대부분의 입학정원을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반영해 선발하는 방식이다. 2002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제안했던 ‘지역 할당제’와 비슷하다. 지역 할당제는 역차별 논란 등을 겪으며 의견 수렴을 거쳐 2005년 서울대 지역균형전형으로 구체화됐다.
한은은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실시하면 지역 간 소득수준과 사교육 환경 차이로 인한 입시 영향을 줄일 수 있다고 봤다. △지방인재 발굴 △대학 내 다양성을 확대 교육적 △입시경쟁 분산을 통한 사회문제 완화 등의 효과를기대했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과 관련, 신입생을 뽑을 때 지역별 합격자를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고3 학생 비율의 0.7~1.3배가 되도록 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학생 잠재력을 기준으로 한 서울대 진학률과 실제 진학률의 차이가 현재보다 64%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난해에 대입해보면 서울 거주 학생 중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는 비중은 작년 전체 신입생 정원의 11.5~21.3%다. 실제 2023년 서울 거주 고3 학생 비중은 전체의 16.4%, 2024년 서울대 신입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2%였다.
이 실장은 “지역별 비중은 할당을 두되 선발기준과 전형방법 등은 대학이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면 참여하려는 대학들이 많을 것”이라며 “유예기간을 고려해 사전에 발표하고 정부는 필요에 따라 재정 지원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지역별 할당을 통한 학생 선발 시 학업 성취도 저하 우려에 대해서는 “기존의 서울대 지역균형전형과 기회균형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의 성적이 타 전형 학생과 거의 차이가 없다”며 “지역별 비례선발제가 잠재력 있는 학생을 잘 선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