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자민당 압승, ‘평화헌법’ 개헌 큰 산 넘어…‘아베노믹스’도 탄력받을 듯

by방성훈 기자
2017.10.22 23:09:00

자민당 압승…‘전쟁 가능 국가’로의 개헌에 박차 가할 듯
아베노믹스·소비세 인상 가속화 전망

/ AFP PHOTO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22일 진행된 일본 중의원 선거 투표 결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압승을 거뒀다. NHK가 이날 오후 8시 투표 마감 직후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민당은 전체 465석 중 253~300석을 확보할 것으로 집계됐다. 공명당(27~36석)과 합치면 280~336석에 달해 개헌 가능한 310석(전체 의석의 3분의 2)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의 오랜 정치적 숙원인 평화헌법 개정, 즉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개조하는 작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경기 활성화를 위한 아베노믹스도 가속화될 전망이며, 그동안 미뤄왔던 소비세 인상도 강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자민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것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확인됐듯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세간의 관심은 자민당과 공명당 연합이 개헌 발의가 가능한 310석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에 쏠렸다.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자민당·공명당 연합만으로도 310석을 얻어낼 가능성이 높다. 설사 310석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잠재적으로 개헌을 지지하는 희망의 당(38~59석)과 일본유신회(7~18석) 의석까지 합치면 310석을 훌쩍 넘어선다.

이에 따라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바꾸기 위한 개헌 작업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올해 초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20년까지 개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총선 승리로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아베 총리는 지난 3월 한 차례만 연임 가능하던 당 총재직을 두 차례 연임할 수 있도록 당칙을 바꿔 1인 장기 집권 체제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현 추세대로라면 내년 가을 그의 총재 3연임은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연임 성공시엔 2020년 도쿄올림픽 이듬 해인 2021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하게 된다. 개헌을 위해 필요한 추진력은 충분히 갖춘 셈이다.

특히 야당 중 희망의 당과 일본유신회의 경우 개헌에 있어서는 아베 총리와 정치적 뜻을 같이 하고 있어 새롭게 짜여진 정치 구도 역시 그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이러한 상황을 적극 활용해 우선은 전쟁 가능한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자위대 존재 근거 자체를 헌법에 명기토록 헌법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자민당의 압승은 아베 총리의 정치적 결단이 일궈낸 결과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는 가케·모리모토 학원 비리 스캔들로 총리 사퇴설에 휩싸이는 등 지지율이 추락하자 ‘북풍몰이’ 카드로 불씨를 되살렸다. 이후 지난 달 ‘중의원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 결과 총선 승리에 그치지 않고 개헌 정족수인 3분의 2 의석 확보라는 과실까지 얻어냈다.



사실 자민당·공명당 연합은 조기 총선을 하지 않았더라도 기존에 확보한 의석만으로 개헌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을 선택한 것은 사학 비리 스캔들을 무마시켜 본인과 내각에 대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는 진단이다. 일각에선 아베 총리가 이번 총선을 통해 야권은 물론 자민당 내부의 비판 여론까지 잠재울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의견이 나온다.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아베노믹스 역시 가속화될 전망이다. 향후 양적완화를 지속·확대하는 것은 물론 기업 관련 규제 개혁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아베 총리는 2012년 말 재집권 이후 연간 80조엔(약 800조원)에 달하는 양적완화를 통해 엔화 약세를 유도하고 일본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 확보를 지원했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묘사되는 경기 침체기에서 벗어나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었다. 이후 수출 기업들의 실적이 매년 좋아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해 실적 전망치를 내놓은 일본 상장사(3월 결산) 1549곳의 순이익이 24조6500억엔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이들 중 64%는 지난 해보다 순이익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대감은 지난 달 중의원 해산 이후 일본 증시가 지속 상승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20일 일본 닛케이지수는 전일대비 0.04% 상승한 2만1457.64를 기록, 14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일본 고도성장기였던 1960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역대 최장 상승 기간과 타이 기록으로, 56년9개월 만에 처음이다. 여기엔 자민당의 압승과 그에 따른 아베노믹스 가속화 및 기업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세제개혁·기업 규제 완화가 아베노믹스와 맞물릴 경우, 달러 강세 및 엔화 약세 등에 힘입어 수출 기업들의 실적이 더욱 개선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가장 수혜를 입을 것으로 관측되는 분야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IBM 등과 거래를 하는 전자부품 산업이다. 이들 미 기업은 트럼프노믹스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들이다. 20일 일본 증시를 끌어올린 것도 교세라, TDK 등과 같은 애플 관련 주식들이었다.

소비세 인상 역시 강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규모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일본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기 위해 2014년 1차 소비세 인상(5%→8%로)을 단행하고 2차 인상(8%→10%)을 추진하고 있으나 야권의 반발이 심해 이미 2차례 연기했다. 경기 위축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는 2019년 10월 2차 인상을 단행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