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상자' 열렸지만‥NLL 진실게임은 이제부터

by김정남 기자
2013.07.15 18:33:28

황진하 새누리당 간사(앞줄 오른쪽)와 우윤근 민주당 간사(앞줄 왼쪽) 등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열람위원들이 15일 오후 경기 성남에 위치한 국가기록원 열람실을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진실게임은 이제부터다. 여야는 15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예비열람을 시작하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각오지만, 열람 이후 또다른 ‘해석논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참여정부가 NLL을 기준으로 ‘등면적’의 공동어로구역를 설정하는 대북전략을 구상했다는 것에는 여야간 이견이 거의 없다. 다만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작 정상회담 당시에는 등면적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NLL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고, 민주당은 남북정상회담 사전·사후과정을 통해 등면적 전략이 입증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회의록 열람 이후에 벌어질 해석논쟁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양측의 논리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여야 열람위원 10명은 이날 오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상견례를 갖고, 곧바로 경기 성남에 있는 국가기록원을 방문했다. 본격적인 예비열람 절차에 돌입하기 위해서다. 예비열람은 여야가 제시한 키워드를 근거로 국가기록원이 선정한 자료를 살펴보고, 필요한 자료를 추려내기 위한 작업이다.

열람위원 10인은 이날 오전 11시40분쯤 국가기록원에 도착한 뒤 철통보안 속에 대통령지정기록물 열람장소로 들어갔다. 이들은 오후 3시쯤 예비열람이 끝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보안각서를 써서 말할 수 없다”면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팽팽한 긴장 속에 회의록 열람이 본격화한 것이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열람이 또다른 논쟁의 시작이 되고 국론갈등으로 빚어지지는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회의록 열람 이후 해석논쟁은 더 격해질 가능성이 크다. 여야가 원활한 자료열람을 위해 선정한 ‘키워드’에서 이미 진실게임의 씨앗이 잉태해있다. ‘NLL’ ‘북방한계선’ ‘남북정상회담’ 등 공통 키워드 3개 외에 새누리당은 ‘등거리·등면적’ ‘군사경계선’을, 민주당은 ‘남북국방장관회담’ ‘장성급회담’ 등을 각각 제시했다.

민주당이 남북국방장관회담과 장성급회담을 키워드로 고른 것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사전·사후과정에서 NLL 기준의 등면적 공동어로구역을 구상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새누리당의 ‘NLL 포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친노(친노무현) 인사인 윤호중 민주당 의원이 최근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7년 11월 2차 남북국방장관회담에서 우리측이 제시한 등면적안 지도와 그해 12월 장성급회담에서 북측이 제시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협력수역방안 지도를 공개한 것도 같은 의도다.

새누리당의 입장은 다르다. 새누리당이 키워드로 등거리·등면적을 고른 것은 노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등면적 공동어로구역을 언급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오히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4차례 NLL 포기를 언급하자 노 전 대통령이 ‘예 좋습니다’라고 한 것은 사실상 포기발언이라는 게 새누리당의 논리다.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정상회담 준비과정에 (등면적 공동어로구역) 논의가 있었다는 건 안다”면서도 “그러나 실제 대화의 장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증거들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여야가 주장하는 남북정상회담의 진실은 결국 ‘선수’와 ‘본게임’의 해석문제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작전은 그렇게(등면적) 짰지만 선수(노 전 대통령)가 본게임(남북정상회담)에 들어가서 엉뚱하게 행동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남북정상회담 뿐만 아니라 사전·사후 각종 회의와 참모진들의 전략까지 전체적으로 봐야한다는 게 민주당의 논리다.

이처럼 회의록을 본격 열람하기도 전부터 여야간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열람 이후에도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에 따라 그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