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확진자 8천명대…'국경봉쇄' 방역망 왜 뚫렸나

by방성훈 기자
2022.01.11 14:59:14

신규 확진 1일 554명→9일 8249명 15배 폭증
주일미군, 검사없이 입출국·외출도 자유 ‘방역 구멍’
기지서 집단감염 발생후 지역사회 급속 확산
외국인 입국금지 2월말 연장…대규모 접종소 재설치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일본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연일 수천명씩 쏟아지며 최근 열흘 새 15배 폭증했다. 오미크론 변이 발생 초기 외국인 입국 금지 카드를 꺼내 들며 강경 대응에 나섰음에도 확진자 수가 급증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AFP)
11일 교도통신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전날(10일) 일본의 코로나19 신규 감염자 수는 6438명으로 집계됐다. 8000명대를 기록했던 8~9일보다는 감소했지만, 이는 주말 동안 검사 건수가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월요일 기준으로는 지난해 9월 6일 8224명 이후 4개월 만에 최다 규모다.

일본 내 코로나19 감염자 수는 지난해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전후로 급증했다가 10월 1000명 아래로 떨어진 뒤 11월 22일 50명까지 줄었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다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첫 날인 1일엔 535명이었으나, 2일 554명, 3일 782명, 4일 1268명, 5일 2638명, 6일 4475명, 7일 6214명, 8일 8478명, 9일 8249명 등 열흘도 지나지 않아 15배 이상 급증했다. 며칠 내 1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오키나와의 주일미군 기지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한 뒤 이 지역을 중심으로 오미크론 변이가 급속 확산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은 오미크론 확산 초기였던 지난해 11월 말부터 외국인 신규 입국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등 강력 대응했다. 하지만 주일미군은 미국에서 출국할 때, 그리고 일본에 입국할 때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않았다. 또 입국 후에도 기지 밖 외출에 별다른 규제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주일미군은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됐고 일본 방역망이 속절없이 뚫리게 된 것이다. 오키나와현의 다마키 데니 지사는 “미군 기지가 오미크론 감염 확산의 큰 원인 중 하나라는 게 명백하다. 철저한 대응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지난 9일부터 이달 말까지 오키나와·야마구치·히로시마현 등 3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긴급사태에 준하는 방역대책인 ‘만연방지 등 중점조치’를 적용키로 했다. 중점조치는 지자체장이 음식점 등에 영업시간 단축을 요청하거나 명령할 수 있는 대책으로, 지난해 10월 기시다 후미오 정권 출범 이후 이를 적용한 것은 처음이다.

미일 정부는 또 약 10만명 규모의 주일미군과 가족 등에 대해 10일부터 2주 동안 불필요 외출을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필수 외출의 경우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토록 했다. 미군의 느슨한 방역 대책으로 전염력이 강한 오미크론이 지역사회로 확산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뒤늦은 대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외에도 저조한 3차 백신 접종(부스터샷), 원활하지 못한 백신 보급, 연말연시 연휴 기간의 대규모 유동 인구 등도 바이러스를 퍼뜨린 요인으로 꼽혔다. 일본의 코로나19 백신 3차 접종률은 지난 7일 기준 0.6%에 그치고 있다. 누적 3차 접종자는 75만 2799명, 하루 평균 접종자 수는 2만 346명 수준으로, 주요 국가들에 비해 저조한 수준이다.



이에 성인의 날(매년 1월 둘째 주 월요일) 연휴 이후 검사 건수가 늘어나면 감염자 수도 다시 급증세를 보일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해 말 의료 붕괴를 경험한 만큼 방역 대책 강화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20~30대 젊은 층에서 오미크론 확산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단기간에 감염자가 급증하면 의료시스템이 또다시 마비될 수 있다”며 방역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1일 총리 관저에서 코로나19 방역 대책을 발표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AFP)
기시다 총리는 오미크론 유입 및 확산을 막기 위해 현재 시행하고 있는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다음 달 말까지 연장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이날 오전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에게 “외국인 입국을 금지하는 정책을 2월 말까지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까지 오미크론 변이 확인 국가·지역에서 귀국하는 일본인은 입국 후 3~10일 동안 지정 시설에서 대기해야 하며, 비자를 받은 외국인의 신규 입국은 제한된다.

기시다 총리는 다만 “인도적, 국익 측점에서 필요한 대응을 할 것”이라며 예외적 허용 가능성을 열어뒀다. 일본 정부는 일본인의 외국 국적 가족, 유학생의 입국 등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또 부스터샷 접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자위대를 투입해 지난해 도쿄와 오사카 등 인구 밀집 지역에서 가동했던 대규모 접종소를 재설치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그는 오미크론 변이의 중증화 비율이 낮다고 하더라도 “고령자 등으로 급속도로 감염이 퍼지면 중증자 발생 비율이 높아질 우려가 있다”며 “마스크 착용 등 냉철한 대응을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선 900만회분의 미사용 백신을 활용해 고령자 접종 시기를 앞당기고, 3월 이후엔 미국 모더나 백신 1800만회분을 활용해 고령자 외 일반인들에 대한 3차 접종도 서두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12세 미만 어린이 대상 백신 접종에 대해서도 “희망자에 한해 가능한 빨리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감염 상황 악화시 봉쇄 가능성도 열어뒀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9일 “3차 접종 시작, 먹는 치료약 실용화에도 의료 붕괴 현상이 나타난다면 행동제한도 검토해야만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