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개발사업 결국 '종지부'…"집값 급락에 매매 끊긴지 오래"

by정수영 기자
2013.09.05 18:01:40

서부이촌동 실거래량 4년간 6건뿐
17억 찍었던 아파트값, 경매 감정평가액 8억 밑돌아
서울시, 연말께 기본 개발계획 구상안 마련..주민들 "대책 기대해보겠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6년만에 완전 백지화되면서 해당지역인 서울 서부이촌동 부동산시장에는 싸늘한 공기가 맴돌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서울시가 12일 발표 예정인 서부이촌동 개발계획에 기대감을 나타내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다.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낡고 허름한 건물들, 비좁은 도로, 길가에 위험하게 주차된 차량들….

총 31조원 규모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부지의 일부였던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의 현주소다. ‘단군 이래 최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던 개발사업이 좌초되면서 서부이촌동 부동산시장에는 차가운 냉기가 감돌고 있다.

용산 개발사업의 최대 주주이자 땅 주인이었던 코레일은 5일 마지막 남은 땅값 1조197억원을 시행사인 드림허브측에 반납, 결국 사업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어 서울시가 지구 지정을 해제하면 이 사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송득범 코레일 사업본부장은 “오늘(5일) 오후 토지대금으로 받았던 자산유동화증권(ABS) 1조197억원을 금융회사에 모두 상환하고 소유권이전등기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무너진 용산 개발…피해는 주민 몫으로

이날 찾은 서부이촌동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서너곳은 침묵 시위라도 하듯 굳게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문을 연 곳을 간신히 찾아 들어가보니 중개업소 안은 썰렁하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월세 거래는 간혹 이뤄지고 있지만, 매매 거래는 끊긴지 오래”라고 전했다.

현재 부동산정보업체와 각종 부동산포털은 서부이촌동 시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시세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인근 하나공인 관계자는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살리겠다고 4·1 부동산대책, 8·28 전·월세대책을 내놨지만 여기는 전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서부이촌동 집값은 몇년 새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달리고 있다. 이촌동 대림아파트 전용면적 114㎡는 2007년 사업 초기에만 해도 실거래가가 17억원까지 올랐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세가 바닥을 향해 수직 낙하 중이다. 경매시장에 나온 이 아파트의 감정평가액은 8억원을 밑돌고 있다. 그나마 새 주인을 찾지 못해 몇 차례 유찰되기 일쑤다.

더구나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계획이 확정된 후 서부이촌동 일대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면서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9년 이후 서부이촌동 실거래량은 현재까지 6건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실제 거래는 경매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성공인 K사장은 “간혹 걸려오는 전화는 경매로 내놓으면 얼마에 팔 수 있느냐는 상담 뿐”이라고 전했다.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은 통합개발사업에 찬성해온 지역 주민들이다. 서부이촌동 212번지 일대 주민대표 정효현씨는 “개발 기대감에 대출을 4억원 이상 받아 이곳으로 들어온 주민들이 한둘이 아니다”며 “정부와 서울시, 코레일, 드림허브 등은 용산 개발 좌초에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희망은 빛은 남아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철도정비창 부지와 서부이촌동 일대 56만6800㎡ 부지에 620m 높이(152층)의 랜드마크 타워와 국제업무·상업·주거시설, 문화시설을 결합한 연면적 317만㎡의 복합개발단지를 건설하려던 프로젝트였다.

당초 코레일이 소유한 용산철도정비창 사업만 개발하려던 계획이었지만, 2007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통합개발로 바뀌었다. 당시 서울시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을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연계해 통합개발하는 안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 통합개발안에 서부이촌동 주민들간 마찰이 벌어지면서 논란이 됐다. 대림아파트와 성원아파트, 동원베네스트아파트 주민들은 보상 문제 등을 내세워 통합개발에 반대해 왔다. 반대로 인근 단독주택 및 연립주택지 일대 주민들은 통합개발에 찬성하며 대립각을 세워 왔다.

이후 부동산시장이 침체 국면에 들어가면서 사업은 위기를 맞았다. 토지주인 코레일와 사업시행사들 간의 갈등도 계속 이어지면서 결국 지난 4월 코레일은 용산 개발사업을 접겠다고 발표했다.

그럼에도 아직 희망의 빛은 남아 있다. 지구 지정 해제와 함께 새로운 개발계획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서다. 서울시는 오는 12일 용산국제업무지구 구역지정을 해제하는 한편 연말께 기본계획 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시 지구단위계획과 관계자는 “연말까지 서부이촌동 기본계획안을 마련한 뒤 내년 주민들 의견을 들어 세부도시계획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일부 주민들은 시가 내놓을 대책을 기다려보겠다는 분위기다. 반면 통합개발에 찬성해온 주민들은 소규모 단위 개발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지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코레일 소유인 용산철도정비창 부지는 매각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 같다. 송득범 코레일 본부장은 “이사회 등을 거쳐 자체 개발이나 매각 등을 최종 결정할 것”이라면서 “자체 개발은 비용 부담이 커 현재로선 매각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사업시행사와 주민들과의 법정소송 공방이 이어질 경우 매각 작업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