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응열 기자
2023.05.24 14:53:34
민주당·정의당, ‘노란봉투법’ 국회 본회의 직회부
경제 6단체 성명 “다수의 힘 앞세워 법체계 무력화”
전경련 보고서 “파업 만능주의 확산, 산업현장 혼란”
학계·법조계도 우려 “쟁의행위의 최후수단인데…”
[이데일리 김응열 손의연 기자] “산업현장에 ‘파업 만능주의’를 만연시켜 국내기업들의 투자뿐 아니라 해외기업들의 직접투자에도 큰 타격을 초래할 것이다.”
노동조합 불법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24일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 거야(巨野)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되자 경제계가 “다수의 힘을 앞세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체계 심사마저 무력화시키며 법안 처리를 강행한 것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이렇게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이날 공동성명에서 “국내 자동차 산업, 조선업, 건설업 등은 협력업체와의 수많은 협업체계로 구성돼 있다”며 “개정안은 사용자 개념을 무분별하게 확대해 원·하청 간 산업생태계를 붕괴시키고 우리 산업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하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대한 다수의 형사처벌이 존재함에도 추상적 개념으로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경영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들 6단체는 “국회는 지금이라도 노조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을 중단하고 법안이 가져올 산업현장의 혼란과 경제적 재앙을 다시 한 번 숙고하길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거듭 호소했다.
이날 전경련은 별도로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의 문제점’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파업이 지금보다 더 만연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법은 노동쟁의 개념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으로 확대하는데, 이 경우 사업조직 통폐합, 구조조정 등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영상 조치도 파업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임금, 근로시간, 해고 등 근로조건에 영향을 준다는 명분으로 이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해고자 복직, 단체협약 미이행 등 사법 구제절차로 해결해야 할 권리분쟁 사안에서도 파업을 해결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위법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산정 시 쟁의행위에 가담한 조합원 개별 기여도를 고려하도록 한 이 법이 가해자를 보호하는 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법은 개별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집단적 불법행위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연대책임을 인정하고 있는데 노조법 개정안이 노조 활동의 연대책임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위헌 소지도 다분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 법은 사용자의 개념을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를 넘어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확대한다. 근로조건의 실질적·구체적 지배·결정 판단 기준이 모호해 산업현장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란 게 전경련 우려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 법은 사용자 개념을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어 수많은 원하청 관계로 이뤄진 산업현장에서 교섭의무, 교섭노조 단일화 등에 관한 소모적인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며 “노사관계 질서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전에 특정할 수 없는 다수의 경제주체가 노조법상 사용자 의무위반에 따른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헌법상 보장하고 있는 죄형법정주의와 명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고도 했다.
학계 및 법조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김영문 전북대 명예교수도 노란봉투법과 관련, “원하청관계에서 원청사용자가 하청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사용자’의 의무와 벌칙을 적용받게 되는데, 죄형법정주의와 법률명확성의 원칙에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며 “개정안은 노동쟁의 개념을 확대해 사용자가 법원에서 사안을 해결할 수 있는 접근권을 막는 등 쟁의행위의 ‘최후수단성 원칙’과 달리 쟁의권이 남용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교수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기업이 도급을 통해 노동유연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생산성과 수익성이 떨어져 결국 국가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라며 “기업의 국내 투자 위축과 해외 이전 가속화로 이어져 국내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연중 계속되는 계열사 노조의 교섭 요구로 경영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며 “기업의 투자결정, 사업장 이전, 구조조정 등 경영상 판단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어 산업현장은 1년 내내 노사분규에 휩쓸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최홍기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는 “오늘날 산업현장에서 야기되는 갈등과 분쟁 양상은 너무 복잡해 부분적 입법 정비를 통해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노사관계의 사법화를 지양하고 노사 당사자의 자율과 책임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하청 근로자의 권익 향상에 반대하는 이는 없지만 방식엔 문제가 있다”며 “합법적 파업권이라는 도깨비 방망이를 쥐여 주는 것이 노사관계 질서나 균형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아 다시 한번 법리적, 실리적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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