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지은 기자
2024.09.26 11:22:05
[2024년 세수재추계]
2년간 '세수펑크' 규모 86조원…법인세 절반 차지
민간 전망치 활용·IMF 기술자문에도 또 대폭 오차
세계잉여금·외평기금 못쓰는데…'인위적' 불용 우려도
[세종=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2년 연속 발생한 대규모 ‘세수 펑크’ 사태는 법인세 예측 실패에서 비롯된다. 올해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기술자문을 받는 등 경기 변동성에 영향을 크게 받는 세목의 특성에 맞춰 추계모형을 수정했지만, 법인세 오차는 15조원에 달해 전체 결손 규모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정부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 아닌 기금 등 여유재원을 최대한 활용해 세수 부족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지난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을 이미 20조원가량 대거 끌어쓴 데다가 올해는 세계잉여금도 여의치 않은 만큼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집행하지 못한 ‘불용’(不用) 예산이 또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설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년 세수 재추계 결과 및 재정 대응방향’에 따르면 올해 재추계된 국세수입 규모는 337조 7000억원으로 올해 예산 367조 3000억원 대비 29조 6000억원 (8.1%) 감소한다고 예상됐다. 역대 최대 규모(56조 4000억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던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86조원의 세수가 덜 걷히는 것이다. 이번 재추계대로 남은 세금이 걷힌다면 세수 오차율은 8.1%로, △2021년 21.7% △2022년 15.3% △2023년 14.1% 등 최근 3년에 비해서는 줄어들게 된다.
세수 부족의 주요 원인은 법인세다. 당초 올해 예산상 77조 7000억원의 법인세 수입을 예상했던 정부는 이번 재추계를 통해 14조 5000억원(18.6%) 줄어든 62조 200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법인세는 기업의 전년도 사업 실적을 토대로 납부하는데, 지난해 상장사 영업이익(개별기준)이 1년 전보다 44.2% 급락하는 등 예상보다 크게 저조해진 데 따른 것이다. 올해 8월 중간예납까지 반영해도 법인세 부족분은 총 결손액의 49%에 달하는 수준이다. 지난해도 법인세는 전년대비 23조 2000억원 급감해 전체의 41%에 해당했다.
법인세 추계 오차가 반복되면서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자 추진해온 여러가지 제도 개선 방안들도 무색해진 상황이다. 기재부는 지난해부터 분야별 민간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하고 법인세 추계 모형에 증권시장이 예측한 실적 전망치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구분하고 당해 기업실적 추정을 위한 최신 정보를 활용하라는 IMF의 기술자문을 토대로 법인세 추계모형을 보완하는 한편, 시장 자문단도 신설했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최근 경제 여건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기업 영업이익과 세수도 변화 폭이 커졌기에 법인세 예측은 어느 나라든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이라며 “올해 상반기까지 수출과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영업이익이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만큼 내년도 법인세수는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소득세는 올해 예산서상 125조 8000억원에서 재추계 결과 117조 5000억원으로 소폭 줄었다. 고용시장 호조세로 근로소득세(3000억원)는 비교적 감소 폭이 작지만, 양도소득세(5조 8000억원), 종합소득세(4조원) 등에는 자산시장의 위축이 반영됐다. 유류세 인하 조치가 지속되면서 교통·에너지·환경세도 당초 예상보다 4조 1000억원 감소했다. 개별소비세와 증권거래세는 각각 1조 2000억원, 4000억원 줄어들 거라는 계산이다.
지난해 세수 재추계 결과 발표 당시 기재부는 △세계잉여금 4조원 △외국환평형기금 등 기금 24조원 △통상적 불용 등으로 결손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올해까지 대규모 결손이 이어지며 2년째 같은 대책을 사용할 수는 없게 됐다. 지난해 20조원 가까이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 조기 상환돼 세수 부족분을 충당했던 외평기금은 올해 이미 38조원을 공자기금에 순상환하기로 계획돼 있다. 세계잉여금 규모는 2022년 9조 1000억원에서 지난해 2조 7000억원으로 감소해 여유분이 크게 줄었다.
올해 기재부가 제시한 카드는 ‘기금 여유재원’과 ‘자연적 불용’이다. 그러나 가용자원을 활용하겠다는 기본 방침만 밝혔을 뿐 지난해와 달리 구체적인 규모는 아직 빈칸으로 남아 있다. 지난해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친 예산을 정부가 임의로 조정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크게 받았던 만큼, 올해는 재원 대책과 관련해 논의를 더 거치겠다는 설명이다.
김동일 기재부 예산실장은 “이제 세수 추계가 끝났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가용 재원을 확인해봐야 하고, 가용 재원이 있다 하더라도 어느 재원을 먼저, 얼마나 쓸 건지도 정해야 한다”며 “관계부처와 국회와의 소통을 통해서 진행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추경을 통해 대응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유지하면서 ‘인위적 불용’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결산상 불용액은 사상 최대치인 45조7000억 원으로, 중복계상되는 정부 내부거래(16조4천억원)를 제외해도 30조원 가까이 불용 처리됐다. 2014년과 지난해를 제외하면 최근 10년간 불용액은 평균 9조 2000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