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초마다 바뀐다"…전력수급 지휘하는 전력거래소에 가다

by임애신 기자
2021.12.09 14:00:00

전력래소 동계전력수급 비상대응훈련 공개
1년 6회 이상 모의훈련 실시…돌발상황 대응
올겨울 기온 예년과 비슷하거나 낮을 전망

[나주=이데일리 임애신 기자] “삐삐삐, 여기는 전력거래소 상황실입니다. 전력수급 부족으로 15시 10분부로 전력수급경보 관심단계를 발령하겠습니다. 각 기관별 조치사항 시행하십시오.”

전력 수급 이상을 알리는 경보 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다행히 실제 상황은 아니다. 겨울철 전력 수요가 예상보다 증가할 것에 대비한 모의 대응훈련이다.

지난 8일 겨울철 피크 대비 유관기관 합동 전력수급 비상대응 훈련을 취재하기 위해 찾은 전남 나주 빛가람로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 이곳은 최일선에서 국가의 전력수급을 총괄하는 곳이다. 공항으로 치면 관제탑 역할을 한다.

전남 나주 빛가람로에 있는 전력거래소(사진=임애신 기자)
중앙전력관제센터가 있는 특수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안내데스크에 신분증을 맡긴 후 개인정보수집 및 이용 동의 서류를 작성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전 문진, 개인 출입 신청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스마트폰은 비닐에 동봉해 들고 들어갈 수 있지만 사진 촬영은 불가다. 기밀 유출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방안이다.

노트북 반입도 가능하다. 다만, 제조사와 모델명, 시리얼 번호 등의 정보를 보완실에 알려줘야 한다. 또 노트북 USB 케이블과 캠은 ‘시큐리티 실(SECURITY SEAL)’로 막는다. 비닐과 스티커는 마음대로 떼면 안된다. 보안관제자의 승인이 있을 때만 봉인을 해제할 수 있다. 가방도 무인사물함에 넣고 꼭 필요한 물품만 챙겨야 한다.

이처럼 절차가 까다로운 것은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가 통합방위법, 국가정보원법에 따라 국가중요(보안)시설로 지정돼 있어서다. 그만큼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어려운 관문을 뚫고 들어간 중앙전력관제센터를 마주하지 입이 떡 벌어진다. 벽면에는 곡선 형태로 큰 모니터 여러 대가 붙어 있다. 모니터 전체 크기가 무려 가로 40m, 세로 5m에 달한다.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수많은 정보에 눈이 핑핑 돈다.

모니터는 실시간 및 일일 전력수급현황부터 전력망, 최대부하전망, 신재생에너지 통제관제시스템, 융통전력 및 송전제약현황 등을 비추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한반도를 비추는 위성사진이다. 이는 기상 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중앙전력관제센터 내부 모습. (사진=전력거래소)
강부일 수급계획팀장은 “전력 수급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기온”이라며 “기상청으로부터 낙뢰 감시 시스템 등 전력거래소에 특화된 정보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벽면 상단 우측에는 ‘365-1=0’라는 수식이 적혀 있다. 이는 365일 잘하더라도 한 번 못하면 모든 것을 잃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 2011년 9·15 대정전 이후 붙인 것으로, 대한민국의 전력 수급 안정을 수호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정동희 이사장은 “전력거래소 업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365-1=0”이라며 “이를 잘 지키는 한 우리 국민이 삶을 편하게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중앙전력관제센터에 외부인 여러 명이 들어가도 센터 관계자들은 모니터만 응시했다. 센터는 겉으로 보면 조용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1초마다 바뀌는 전력 현황판 숫자를 보니 긴박감이 절로 느껴진다.

이날 동계 전력수급 비상 대응 훈련은 중앙전력관제센터를 그대로 축소한 실전 모의훈련 시설인 급전훈련센터에서 이뤄졌다. 전력거래소가 지난 2014년 나주로 본사를 이전한 이후 급전훈련센터 모의훈련 모습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훈련은 겨울철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날은 △예보에는 없었던 갑작스러운 한파로 인해 전기 사용이 급증한 경우 △폭설 등 기상 오차로 인한 신재생에너지 변동 대응 △대용량 발전기의 갑작스러운 고장 대응 훈련이 이뤄졌다.

“현지시간 15시 10분으로 수급 경보 관심 단계를 발령하고 비상조치를 시행하겠습니다. 승인을 요청드립니다”

상황실에서 전력 수급 이상을 포착하자마자 주준영 중앙전력관제센터장은 정동희 전력거래소 이사장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중앙전력관제센터에 근무하는 인력은 총 75명. 이 중 42명이 한조 7명씩 6개조로 교대근무를 한다. (사진=전력거래소)
이사장 승인이 떨어지자 “삐” 소리가 나며 경보가 울린다. 상황실 관계자들이 근무 지침에 따라 마이크로 대화를 이어나가며 업무를 처리한다. 전력경보 소리가 워낙 커서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신기한 점은 상황실 직원들끼리는 알아듣고 비상대응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정 이사장은 “처음에는 대화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제는 편하게 들린다”며 “전 직원이 경각심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사장이 비상조치 시행 승인을 내리면 상황실 직원들은 한국전력과 한국에너지공단, 전기안전공사,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산업정책과 등 핫라인을 통해 유선으로 전력수급 비상단계를 발령하고, 단계별 조치 사항을 관계기관 합동으로 시행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이 모든 것이 연습에 불과하지만 상황실 직원들 얼굴엔 웃음기 하나 없다. 실제 상황을 방불케 할 정도로 상황실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최홍석 수급운영팀장은 “1년에 최소 6번 이상 훈련한다”며 “실제 수급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이곳에 대책본부를 구성해 지휘한다”고 설명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겨울 기온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 이사장은 “국민이 전력 걱정하지 않도록 수급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