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다툼 번진 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핵심 쟁점은?

by박종오 기자
2020.11.19 11:05:13

KCGI, 한진칼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 제기
산은 대상 증자가 '긴급한 자금 조달'인지 관건
법조계도 법원 판단에 주목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대한항공(003490)의 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가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정부의 한진칼(180640) 지원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다른 주주의 권리를 침해한 상법 위반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두 항공사 통합은 산업은행이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입하면, 한진칼이 이 자금과 자회사인 대한항공 주주의 돈을 합쳐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구도다. 한진칼 경영권을 놓고 조 회장과 경쟁 중인 3자 연합 측은 조 회장이 일방적으로 정부 지분을 끌어들여 기존 주주의 권리를 훼손했다며 법적 대응에 본격 착수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사모펀드 KCGI(강성부 펀드)는 전날 법원에 한진칼의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을 제기했다. KCGI는 조 회장의 누나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과 주주 연합을 구성하고 있다.

KCGI가 가처분을 낸 이유는 한진칼 이사회가 지난 16일 산업은행을 상대로 신주 706만주를 새로 발행해 5000억원을 조달하기로 한 결정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현재 조 회장이 지배하는 한진칼 이사회는 기존 주주가 아닌 산업은행을 신주 인수자로 정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5000억원을 조달하고, 산업은행에 한진칼이 보유한 대한항공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교환사채를 추가 발행해 3000억원을 끌어오기로 했다.

문제는 현행 상법이 기존 주주의 신주 인수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법 418조 1항은 “주주는 그가 가진 주식 수에 따라서 신주의 배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주식회사의 대주주가 자기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주식을 발행해 다른 주주의 지분율 희석을 초래하는 것을 제한한 것이다.

KCGI는 한진칼 이사회의 산업은행을 상대로 한 3자 배정 증자 결정이 기존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KCGI 측은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경영진의 경영권이나 지배권 방어를 위해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것은 다른 주주의 신주 인수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무효라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확립된 태도”라며 “조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국민 혈세를 동원하고 한진칼 주주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이번 거래는 시장 경제의 본질과 법치주의의 관념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관건은 한진칼의 3자 배정 증자가 상법이 허용하는 예외 조항에 해당하는지다.



상법 418조 2항은 “같은 조 1항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회사 정관에 정하는 바에 따라 주주 이외의 자에게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며 “다만 이는 신기술 도입, 재무 구조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한진칼의 회사 정관 8조에는 “회사의 긴급한 자금 조달을 위해 국내·외 금융기관 또는 기관 투자가에 신주를 발행하는 경우에는 주주 외의 자에게 이사회 결의로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고 쓰여있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통상 기업은 상법상 기존 주주 우선 원칙과 제3자 배정 증자가 가능한 요건을 회사의 정관에 대부분 반영한다”면서 “법원이 이 정관을 기준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합법성을 따지는 만큼 결국 이번 한진칼의 산업은행을 상대로 한 3자 배정 증자가 ‘긴급한 자금 조달’에 해당하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판례를 보면 법원은 3자 배정 증자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편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4월 주식회사 피씨디렉트가 제기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 무효 확인 소송의 상고를 권순일·이기택·박정화·김선수 등 대법관 만장일치로 기각했다. 피씨디렉트는 앞서 서울고등법원이 이 회사의 2016년 3자 배정 방식 신주 발행이 무효라고 판결한 것에 반발해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원심이 피씨디렉트의 제3자 배정 방식 신주 발행이 재무 구조 개선 등 상법과 회사 정관이 정한 사유가 아닌 현 경영진의 지배권 확보를 위해 이뤄진 것으로, 상법 규정과 정관을 위반해 기존 주주의 신주 인수권을 침해한 현저히 불공정한 것이어서 무효라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반면 한진칼과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KCGI 등의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예상하고 사전에 다수 로펌을 통해 법리 검토를 거쳤다”면서 “이번 3자 배정 증자가 왜 회사의 긴급한 자금 조달에 해당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는 법원의 판단에 주목하고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법원이 회사의 3자 배정 증자를 허용하는 상법과 정관의 요건을 엄격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한진칼의 신주 발행을 가처분을 통해 못하게 하는 것이 법원 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향후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