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상승=수출 가격경쟁력 증가’는 옛말…2010년부터 영향 ‘뚝’

by김형욱 기자
2022.10.19 12:43:35

산업연구원, 원화 환율의 수출영향 감소와 시사점 보고서
디스플레이·반도체·자동차 등 환율-수출 영향 거의 사라져
소비재 수출은 환율 영향 오히려 커져…"환위험 관리필요"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가격경쟁력도 커진다는 오랜 통념이 이미 10여 년 전부터 크게 약화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원·달러 환율이 1400억원을 넘어섰으나 수출 증가율이 둔화하는 현 상황을 뒷받침하는 분석이다. 우리 기업이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 구도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일부 업종은 여전히 환율 변동에 취약한 만큼 맞춤형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뒤따랐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이소라·강성우)은 1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원화 환율의 수출영향 감소와 시사점’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2010년을 기점으로 원·달러 환율과 수출의 관계성이 크게 약화했다고 봤다. 2010년 이전까진 실질실효환율(교역 상대국과의 교역량·물가 변동을 반영한 환율)이 1% 내렸을 때 주요 산업 수출이 0.71% 늘었으나, 이후 수출 증가율은 0.55%로 줄었다는 게 그 근거다. 특히 디스플레이(1.42%→0.10%)와 반도체(1.42→0.10%), 자동차(0.96→0.12%), 이차전지(0.27→0.09%) 업종은 환율과 수출의 상관관계가 사실상 사라진 것으로 관측됐다. 일반기계(0.82→0.53%)나 섬유(0.56→0.52%), 석유화학(0.65→0.66%) 등 다른 주요 업종도 2010년을 전후로 소폭 줄었거나 큰 변화가 없었다.

가공 단계별로 보면 1차산품은 2010년 이전까지는 실질실효환율 1% 하락 때 수출이 1.27% 늘었으나 2010년 이후 수출은 오히려 0.62% 줄며 관련성이 아예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원유나 광물 등은 환율과 무관하게 국제 시세에 따라 움직이게 된 것이다. 중간재(0.92→0.65%)나 최종재(0.53→0.48%)에서도 환율과 수출의 상관관계가 약화한 모습이었다.



보고서는 우리의 수출 구조가 기술집약적 산업군으로 바뀐 데 따른 긍정적 변화라고 분석했다. 2010년 이전까진 주변국 경쟁기업과 가격 경쟁을 해야 해서 환율 영향이 컸으나, 반도체나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기업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면서 환율 변화에 따른 가격 영향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이소라 부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론 환율 변동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구조로의 변화가 바람직하다”며 “국내 제품의 기술 고도화와 공급망의 주도적 지위를 확보하는 동시에 내수 부문의 성장으로 내수·해외 부문의 동반 성장 경제구조를 지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다만 특정 가공단계에선 환율 영향력이 오히려 더 커졌고, 앞으로 환율이 수출에 끼치는 영향이 다시 커질 수도 있는 만큼 정부와 각 기업의 환율변동 대비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실제 최종재 중 소비재는 2010년 이전까지 실질실효환율이 1% 내릴 때 수출이 0.23% 늘었으나 그 이후엔 이보다 많은 0.25%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연구위원은 “수출에 대한 환율 영향력은 앞으로 다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환율 변동이 국내 경제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취약 산업·기업에 대한 환율변동 위험 관리 시스템과 금융지원 환경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처럼 환율 변동이 국내 물가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 핵심 원자재와 부품을 더 안정적으로 수급하고 수급처를 다변화하는 대응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