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짝짓기 때 중요한 것

by김병재 기자
2012.11.14 16:04:41

바야흐로 짝짓기의 계절이다. 한 결혼 정보업체의 발표에 따르면 11월은 회원 가입률이 30%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이때 가입자 유형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짝이 없어서 짝을 찾는 자와 짝은 있지만 그 짝이 결혼에 적합한지 의심하는 자. 후자는 너무 비인간적이다. 하지만 새해를 앞두고 짝짓기에 대한 시도와 결단을 더 신중하게 하는 시기임은 분명한 것 같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누구나 세 가지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앞’ ‘뒤’ ‘옆’. 그중에서도 옆의 자리를 허락 받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흔히들 배우자나 연인을 그 옆’의 공간에 둔다.

하지만 그 외에 그 ‘옆’ 공간을 차지하는 이는 진정한 자신의 ‘비전’을 이해하는 자다. 뮤지컬 ‘캣츠’ ‘오페라의 유령’으로 유명한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제작자 캐머런 매킨토시가 그 좋은 예이다. 이들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한 중요한 짝이 되어 전 세계에 최고의 뮤지컬을 발표했다.

필자도 얼마 전 설레는 마음으로 ‘짝짓기 행사’에 참여했다. 서울 영상위원회에서 제1회 ‘영상 크리에이티브 멀티마켓’이란 이름으로 짝짓기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기업 채용 박람회 같은 갑과 을의 만남이 아니다. 흔히 하나의 작품을 발표할 때 출산의 고통에 비유를 한다. 산고의 고통을 같이할 작가와 기획자들의 미팅 주선에 서울시가 나선 것이다. 행사의 취지는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를 지향하고 있다. 소설, 영화,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모여 자신의 아이템을 수줍게 발표했다. 그 후 위원회에서 지정해 주는 상대들과 3일간 의무 미팅을 하게 된다. 후에 마음에 드는 파트너와는 에프터를 갖는다.



한 작품이 기획돼 완성품이 나오기까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5년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시간까지도 소요된다. 실력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풍파를 같이 감내해야 할 인내심 있는 상대를 찾는 것은 배우자를 고르듯 신중할 수밖에 없다.

미팅의 순서는 처음 맞선 남녀가 만나듯 팽팽한 기가 느껴진다. 아직은 자신의 몸값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단계다. 자신의 스펙을 좍 나열해 어필시킨다. 하지만 한수 위인 상대는 이미 상대 정보를 미리 알아본 후이다. 다음 티타임엔 좀 더 부드러운 대화를 이어간다. 이때 주의해 할 것은 부정적인 말투나 전 작업자들 험담 혹은 뭐든 다 된다는 허세다.

“내가 예전에 100억원 규모의 영화를 기획했는데 좀 문제가 생겨서…” 등의 왕년의 금송아지 이야기나 또 살짝 아는 유명인의 경력에 묻어가는 말투 “내가 그 유명 감독을 많이 도와줘서…” 등은 믿음을 주지 못한다. 결국 이런 저런 거품과 과도한 기대치가 빠지고 나면 서로의 세계관, 가치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한 짝짓기란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시뮬라크르(Simulacre) 현상으로 세상을 보는 때가 많다. 노총각 맞선에 갑자기 미녀 재벌 2세가 나타나지 않고, 게으른 기획자 앞에 갑자기 천재 작가가 나타나지 않고 비리 정치판에 순백의 슈퍼영웅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선을 앞둔 때이다. 실질적인 정책은 오간 데 없고 단일화란 가상현실에 유권자들은 마냥 혼란스럽다. 정말 거국적으로 비전을 보는 혜안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극작가 이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