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증세 강행하겠다는 바이든…美 증시 벌벌 떤다

by김정남 기자
2021.09.14 13:34:47

윤곽 드러낸 미국 민주당 법인·소득세 증세안
"최고세율 법인세 26.5%, 소득세 39.6%로 인상"
기업 실적·주가에 찬물 우려…"인플레보다 위험"

(그래픽=문승용 기자)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민주당이 대규모 증세를 추진한다. 최대 3조5000억달러(약 4100조원)의 인프라 투자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법인세율과 소득세율 인상을 제안했다. 기업과 부자로부터 세금을 걷어 추가로 돈을 쓰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의중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미국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게 미국 정부의 복안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 수익이 줄어 증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델타 변이, 인플레이션보다 더 큰 ‘숨은 복병’이 증세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리처드 닐 하원 세입위원장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1.0%에서 26.5%로 올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증세안을 내놓고 민주당 의원들에게 회람했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이 당초 공언한 28.0%보다는 낮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35.0%에서 21.0%로 낮췄던 걸 일부 되돌리려는 시도다. 증세에 부정적인 민주당 일각에서 제시하는 25.0%와 비교하면 다소 높다. 법인세율은 기업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연 500만달러 이상 수입을 내는 기업에 26.5%, 40만~500만달러의 경우 21.0%를, 40만달러 미만의 경우 18.0%를 각각 적용하는 방식이다.

민주당은 또 자본이득에 대한 최고세율을 20.0%에서 25.0%로 올리기로 했다. 미국 기업의 해외투자 수익을 두고서는 최저세율을 10.5%에서 16.5%로 인상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아울러 부유층 소득세 최고세율을 기존 37.0%에서 39.6%로 높이기로 했다. 여기에 연소득 500만달러 이상은 추가로 3.0%의 부유세를 물리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연소득은 개인 기준 40만달러, 부부 합산 기준 45만달러부터 이같은 세율을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민주당의 방침은 인프라 예산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기업과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걷겠다는 걸 공식화한 것이다.

증세안은 이르면 이번주 하원 세입위에서 표결에 부쳐진다.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에서는 어떻게든 처리되더라도, 결국 문제는 상원이다. 현재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50대50으로 양분하고 있는데, 자칫 민주당 내 이탈표가 나오면 처리가 무산될 수 있어서다.

민주당은 여야 초당파 의원들이 합의한 1조달러 예산 외에 3조5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딜을 공화당의 동의 없이 독자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필리버스터(합법적인 수단으로 의사 진행을 지연시키는 의회 내 무제한 토론)를 피할 수 있는 예산조정절차를 통해서다. 민주당 의원 50명과 함께 함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까지 동원하면 과반을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당내 중도파 조 맨친 상원 의원부터 공개적으로 “엄청난 국가부채를 초래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CNBC는 “바이든 대통령이 당초 희망했던대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주목할 건 이번 증세가 경제 전반에 미칠 여파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이날 “(민주당이 추진하는) 증세는 연말까지 증시의 가장 큰 리스크”라고 분석했다. 델타 변이 확산, 높은 인플레이션보다 시장을 더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민주당의 제안이 그대로 처리돼 법인세율이 오른다면 내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내 기업들의 수익은 5%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데이비드 코스틴 수석전략가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세제 변화를 주가에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했다”며 “단기적으로 기업 실적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상 초유의 ‘10월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대한 공포는 더 커졌다. 미국은 연방부채 상한을 법률로 정하고 있는데, 지금은 이를 초과한 상태다. 연방정부가 팬데믹 이후 천문학적인 돈 풀기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부는 8월부터 국채를 발행하지 못하고 있다. 의회에서 상한선을 높여줘야 미국은 사상 초유의 디폴트를 피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 현재 미국 의회는 인프라 투자 법안에 더해 이날 나온 증세 법안까지 논의해야 하는 실정이다. 부채 상한선 관련 법안이 뒤로 밀릴 경우 설마 했던 디폴트 공포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증세가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를 위축시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폭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 역시 나온다. 최근 월가 내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 논쟁이 부쩍 늘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