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앞둔 충청권 지자체, 앞다퉈 선심성 행정 '봇물'

by박진환 기자
2021.12.27 14:14:09

중·장기적 재정여건·정책효과 고려 없이 현금·현물집행 매몰
충남도, 내년부터 어린이·청소년 26만명 버스비무료화 시행
대전 대덕구, 어린이 용돈수당에 입학축하금까지 지급 추진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15일 충남도청 브리핑룸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버스요금 무료화 지원사업 시행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충남도 제공
[대전·홍성=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권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선심성 행정에 혈안이다. 수도권과 비교하면 재정 상황이 열악한 지자체들이 중·장기적인 재정 여건과 정책 효과 등을 고려하기보다는 표퓰리즘 성격의 현금·현물 집행에 매몰돼 있다는 지적이다. 행정안전부, 대전시, 충남도 등에 따르면 충남도는 지난 15일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버스요금 무료화 지원사업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전국 최초로 7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국가유공자 및 유족 등에 버스비 무료화 정책을 도입한 충남도는 내년 4월부터 18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해서도 버스비를 무료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상 인원은 충남에 거주하는 만 6∼12세 어린이 14만 2682명, 만 13∼18세 청소년 11만 8108명 등 모두 26만 790명이다.

이용은 충남형 교통카드를 이용해 먼저 버스비를 지급한 뒤 1일 3회 이용분에 한해 환급받는 방식이다. 이에 필요한 예산은 연간 288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중 절반은 충남도가 나머지 절반은 15개 시·군이 각각 부담한다. 애초 이 계획은 2022년 6∼12세, 2023년 13∼15세, 2024년 16∼18세 등 단계적으로 지원 대상을 늘려나갈 방침이었지만 내년부터 전면시행으로 변경됐다. 이 계획이 발표되자 과도한 교통복지라는 지적과 함께 지원대상에서 빠진 18세 이상 대학생과 청년 등의 형평성 논란 등 여러 문제점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또 재정상황이 열악한 일선 시·군을 대상으로 도지사의 생색내기식 사업에 동참을 강요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이에 충남도 관계자는 “몇몇 시·군의 반대도 있었지만 여러 차례 도지사와 시장·군수 간 회의와 협의를 통해 사업참여를 이끌어 냈다”며 “코로나19 여파로 버스회사의 경영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지원금보다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버스비 지원을 통해 교통복지와 버스회사 경영난 개선 등 여러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소속과 무소속 대덕구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 소속 대덕구의원들의 내년 본 예산 직권상정에 반대하는 티켓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김수연 대덕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대전시도 내년부터 신생아에 대해 36개월까지 매달 3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대전형 양육 기본수당’을 도입·추진한다. 아이가 대전에서 태어난 뒤 3년 이상 계속 거주하면 모두 1080만원을 준다는 것이 기본 골자이다. 대전시는 인구를 늘리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입장이지만 선거를 의식한 전형적인 표퓰리즘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전 대덕구의 경우 충청권 지자체 중 선심성 행정 논란이 가장 뜨거운 지역이다. 어린이 용돈수당에 이어 입학축하금 지급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덕구는 당장 내년부터 초등학교 4∼6학년 어린이들에게 매월 2만원씩 용돈을 지급하기로 했다. 올해 6월 해당 조례안이 구의회 상임위에서 부결됐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관례를 깨고 부결된 안건을 직권 상정해 기습 처리했다.



지난 21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대전 대덕구의원들이 10억 3000만원 규모의 어린이 용돈수당 사업이 포함된 내년도 본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이날 민주당 소속 대덕구의원들은 본회의를 열어 5154억원 규모의 내년도 본예산안을 단독 상정해 처리했다. 그간 국민의힘 등 야당의 반대가 계속됐고, 민주당은 이 사업을 국민의힘 의원들이 없는 상임위에 배정해 용돈수당 예산안을 심사 처리했다. 이에 국민의힘 소속 김수연 대덕구의회 예결위원장은 “민주당은 협치와 여야 합의 정신을 내던지고 수적 우위를 내세워 의회 독재를 일삼고 있다”며 “용돈수당은 내년 대선과 지선을 앞두고 선심성 돈 뿌리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대덕구는 초·중·고교 신입생(내년 기준 4648명)에게 입학 축하 차원에서 10만원씩 지급하자는 내용의 ‘대전시 대덕구 학생 입학축하금 지원 조례안’을 지난 8월 대덕구의회에 제출했다.

정치권은 물론 지역주민도 “대덕구는 대전 5개 자치구 중 예산이 가장 열악하고, 13%대의 낮은 재정자립도로 구비로 직원들 월급도 간신히 지급할 정도”라며 “어린이 용돈수당을 전국 최초로 강행하려는 것은 구청장이 선거를 앞두고 치적 쌓기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덕구 관계자는 “대덕구는 인구감소가 심각한 상황으로 ‘대덕의 아이는 대덕이 키운다’는 기조 아래 아이들의 행복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용돈수당 지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박정현 대전 대덕구청장이 어린이 용돈 수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대전 대덕구청)
충남도교육청도 재난지원금 지급 계획을 밝히면서 논란에 가세했다. 충남교육청은 이달 중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 260억원을 편성해 내년까지 충남지역 모든 유·초·중·고교 학생들에게 교육재난지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지급 방식은 올해 10월 대전교육청이 지원한 것처럼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10만원권 선불카드이다. 충남교육청 관계자는 “재난지원금 지원 조례에 근거한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고려한 선심성 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육동일 충남대 명예교수는 “앞으로 선거가 더 가까워질수록 지자체들의 선심성 행정은 더 극성을 부릴 것”이라며 “문제는 집행부를 감시·견제해야 할 지방의회가 같은 당 소속 단체장을 위한 거수기로 전락했고 시민단체도 정치권에 입문하는 인사들이 늘면서 고유의 역할과 기능이 축소됐고 그 결과 지자체 단체장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게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방정부를 견제·감시하기 위한 지방의회와 시민단체, 언론 등의 기본적인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당분간 지자체 단체장들의 선심성 행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