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아픔’ 보듬은 文대통령 “아픔 깊었지만 제주의 봄 피어날 것”(종합)
by김성곤 기자
2018.04.03 11:27:37
3일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 참석…진상규명·명예회복 강조
노무현 전 대통령 이어 12년 만에 현직 대통령 참석
“4.3의 진상규명·명예회복,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 없을 것”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인간 존엄 꽃 피워야"
|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ㆍ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ㆍ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추모비에 분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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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4.3은 깨어났다.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리고, 또한 깊이 감사드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 4.3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으로서 국가폭력에 따른 무고한 희생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 주제로 제주4.3평화공원 일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이라면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제주 4.3 사건은 해방 이후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 이후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에 1에 해당하는 3만여명이 희생당한 한국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다. 문 대통령의 이번 4.3희생자 추념식 참석은 지난 2006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참석 이후 약 12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해 국가적 추념행사로 위상을 높이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우선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게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다”며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념이 그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학살터에만 있지 않았다. 고통은 연좌제로 대물림되기도 했다”며 “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4.3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준 분들도 있었다”며 △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동만 감독의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고 김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 등을 하나하나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됐다”며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000년 김대중 정부 당시 4.3진상규명특별법 제정과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4.3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을 예로 들면서 “그 토대 위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 더 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이라면서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와 관련해 유해발굴사업의 지속, 배·보상과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 등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이라면서 이념을 초월한 국민적 화합과 상생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 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용서로 이념이 만든 비극을 이겨냈다”며 “2013년에는 가장 갈등이 컸던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조건 없는 화해를 선언했다. 제주도민들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 국민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제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니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4.3의 진상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되찾는 일이다. 4.3의 명예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며 “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인간의 존엄함을 꽃피울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가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