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정훈 기자
2013.03.20 17:11:25
예금과세 부결..대안 마련 모색·러시아 차관 요청 가능성
대안 마련 못하면 디폴트-유로존 이탈 우려
[뉴욕=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양미영 기자] 키프로스 의회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으로부터 100억유로(약 14조4000억원)의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대신 은행 예금에 과세하는 안을 부결시켜 유로존에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키프로스는 유로존과 추가 협상을 진행하면서 국채 발행이나 러시아 차관 등 으로 자금을 확보할 방침이다.
◇예금과세안 결국 부결
키프로스 의회는 19일(현지시간) 세 차례 연기 끝에 구제금융 지원 비준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여당으로부터 단 한 표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됐다. 이에 따라 키프로스는 구제금융 협상안 대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키프로스는 일단 국민적 반발이 거셌고 의회까지 외면한 예금 과세 대신에 필요한 세수 목표치 58억유로를 확충할 수 있는 다른 대안에 대해 유로존 국가들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이미 부결 가능성을 점쳤던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베렌버그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홀거 슈미딩은 “은행 예금에 세금을 매기는 것도 처음이지만 구제금융 지원을 거부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라며 “앞날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표결 가능성..러시아 차관 등 ‘플랜B’ 마련
유로존은 일단 키프로스에 재고를 요청해 재표결하는 최종 기회를 줄 가능성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키프로스 의회의 부결 결정은 예금자 보호 의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거나 우방국 러시아를 의식한 것으로 보고 키프로스가 구제금융 방안을 결국 수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와 함께 국채 발행이나 러시아로부터 신규 차관을 도입하는 방안 등도 점쳐지고 있다. 특히 국채 발행 여건이 좋지 않은 만큼 차관 도입이 더욱 유력하다.
실제 이날 사퇴설이 나돌았던 미칼리스 사리스 재무장관은 오후에 러시아 모스크바로 날아가 러시아 재무당국과 협의를 진행한 뒤 표결시간에 맞춰 귀국한 것으로 알려져 이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사리스 장관은 20일에도 러시아 관계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키프로스가 러시아의 은행 지원을 포함한 ‘플랜 B’를 준비중이라고 전했다.
키프로스 정부 관계자들은 키프로스가 러시아에 은행과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 등의 지분을 제공하고 자금을 조달해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 러시아는 키프로스에 대해 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관대한 모습을 보였으며 이에 따라 지난 2011년말 키프로스에 25억 유로의 차관을 제공한 바 있다. 러시아는 기존 차관 만기를 연장해주고 상황에 따라 추가 차관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키프로스가 다른 자금조달 방안을 찾지 못할 경우 자칫 디폴트(채무 불이행)까지 내몰릴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유로존 이탈 수순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키프로스 은행들은 오는 21일까지 문을 닫을 예정이며 일부 정부 관계자들은 26일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키프로스 중앙은행은 은행 문을 열면 전체 예금의 10% 이상이 빠져나가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사태)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ECB는 키프로스 은행에 추가 유동성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지만 키프로스가 구제금융 조건을 거부하면 유동성 공급을 철회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관계자들은 키프로스가 은행 계좌의 하루 인출규모에 제한을 가해 인출 속도를 늦출 수 있으며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키프로스 2대 은행을 합병한 후 비수익자산을 배드뱅크로 분리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