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박보희 기자
2013.01.17 16:26:23
[이데일리 이진우 박보희 기자] 전기를 만드는 데도 돈이 들어가지만, 전기를 못 쓰게 막는 데도 돈이 들어간다. 지난해 여름에도 그런 전쟁을 치렀다. 폭염으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자 한전은 피크타임에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2400억원의 절전보조금을 퍼부었다. 돈을 줄테니 공장을 돌리지 말라는 뜻이다. 지난 겨울에도 매일 50억원씩 이런 절전 보조금을 주며 전력 수요를 조절했다. 작년에 이런 전기 전쟁에 쓴 돈이 무려 4000억원이다. 최근 들어 한여름과 한겨울에 늘 이런 난리가 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력 수요가 예상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예상’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걸까. 예기치 못한 어떤 변수 때문에 이런 전기 부족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일까.
전력거래소는 2년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운다. 앞으로 15년간 전력 수요가 어떻게 변할지 내다보고 전기가 부족하지는 않는지, 필요한 전력을 어떻게 공급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인구 증가나 경제성장률을 기본 변수로 사용한다. 문제는 수요 예측에 갑작스런 기온 변화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냉난방용 전력 수요는 갑자기 날씨가 덥거나 추운 날 급변하는데 날씨가 어떻게 될 지는 수요 예측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물론 날씨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한계때문에 생기는 문제이긴 하다.
김완수 전력거래소 수요예측실 차장은 “중장기 전력수요계획은 경제성장률과 산업구조 변화, 전기요금 전망 등을 고려해 세운다”며 “하지만 미래의 기온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답했다. 최도영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 또한 “장기 전망에는 과거 평균 기온이 유지되는 걸로 가정한다”며 “장기 전망에 기온 변수는 큰 고려대상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날씨는 전력사용량에 큰 변수로 작용한다. 우선 그동안 전력수요 피크타임은 늘 여름철에 발생했는데 2009년 이후에는 겨울철에 생긴다는 점도 예상보다 추워진 겨울 탓이다. 전력거래소는 2010년 5차 수요예측에서 지난해 전력 피크 수요를 7441만kW로 예상했지만 기온이 영하 14도로 떨어진 지난달 26일 순간 최대전력수요는 7658만kW를 기록했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기온 변수가 아무래도 수요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작년에 만들어진 6차전력수급계획에는 기상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이용해 기온 변화와 기후변화를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의 경우 자체 기후 센터가 있어 전력수급계획을 세울 때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나라별로 전력수요 예측법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기본적인 예측법은 비슷하고 다만 나라별 특성이 적용되는 정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는 것을 예상하더라도 난방 수요가 어느정도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기온이 내려가면 석유난로나 가스난로를 사용할 수도 있고 전기난로를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전력난은 사람들이 예상보다 전기난로나 온풍기 등 전기난방기구를 쓰는 경우가 늘었다는 데서 발생했다. 전기요금이 싸기 때문인데 역시 수요예측에서 빠뜨린 부분이다.
3차전력수급기본계획이 발표된 2006년 냉난방 수요를 제외한 기본 전력수요량은 4500만㎾였는데 영하 5도를 기록한 1월 3째주 5500만㎾를 기록했다. 전력거래소는 당시 난방 수요를 1000만㎾로 추정했다. 올해 12월 같은 기온일 때 7300만㎾까지 수요가 올라 난방용으로 1350만㎾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하 14도였던 지난달 26일 순간최대전력수요는 7658만㎾로 난방용으로 1700만㎾가 사용됐다. 난방용 수요가 6년만에 70% 가량 늘어난 셈이다. 전력 거래소 관계자는 “3~4년 전부터 난방 패턴이 변했다”면서 “과거에는 여름철에 전력 사용량이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난방 방식의 변화로 이제는 겨울철 전력 사용량이 여름철을 넘어설 정도로 크게 늘었다. 전기 난방이 이렇게 늘어날 것은 예상하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전력거래소 측은 전기요금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 동안 석유나 가스 가격은 계속 오르면서 전기난방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실제 난방용 전력수요는 2009년부터 큰 폭으로 상승했다”며 “2008년까지는 전년 대비 2~3% 정도 증가율을 보였지만 2009년부터 1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2006년 1000만㎾의 전기가 난방용으로 사용됐지만 2009년에는1600만㎾, 2010년 1월에는 1900만㎾로 늘었다.
’
하지만 2010년 난방용으로 1900만㎾를 공급하고도 약 670만㎾의 예비 전력을 확보했던 것을 보면 수요예측에 생긴 빈틈을 난방용 전력 수요 때문으로만 돌리기는 부족해 보인다. 지난 3차계획에서 정부는 올해 최대 전력 수요를 7276만㎾로 예측하고 수요관리를 통해 6712만㎾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수요관리를 하고도 7659만㎾를 기록했다.
정부는 2006년 3차 수요예측에서 앞으로 2010년 이후에는 우리나라가 전력저소비형 산업구조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하고 전력사용량이 연평균 1.4%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이 또한 맞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2010년 상업용으로 130190GWh, 산업용으로 205859GWh의 전기가 사용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실제 2010년 상업용 전력사용량은 예상보다 3545GWh 많은 133735GWh, 산업용은 10050GWh 많은 215909GWh를 기록했다.
수요관리 목표가 수급 전망에 과도하게 반영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과거에는 정부가 절전을 요청할 경우 기업이나 상업용 건물에서 알아서 전기 사용을 줄이거나 자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이런 지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것도 전력난의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2년마다 전력수급계획을 세우고 미래 15년의 전력수요를 예측하는 이유는 전기는 지금 당장 부족하다고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발전소 하나를 짓는데 평균 5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지금의 전력 부족은 5년 전인 2006년 세워진 3차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요 예측이 크게 잘못됐거나 계획했던 만큼 공급이 늘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차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2012년 최대전력수요를 6712만㎾로(수요관리후), 총발전설비용량은 8147만㎾로 예상했다. 하지만 26일 현재 순간최대전력수요는 7658만㎾를 넘어섰다. 공급 가능한 전력량은 7997만㎾. 수요는 예측을 넘어섰지만 공급은 예측을 밑돌았다. 수요예측이 어긋났더라도 공급량을 맞췄다면 지금보다 여유있는 전력 공급이 가능했다. 하지만 공급량을 예상만큼 늘리지 못했다. 계획했던 만큼 발전소를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3차계획대로라면 올해 정부는 부곡복합3,4호기(100만㎾) 서울복합1,2호기(100㎾) 송도복합1호기(90㎾) 양주복합1호기(70만㎾) 율촌복합2호기(55만㎾), 오성LNG복합(83만㎾) 등 총 498만㎾를 공급할수 있는 발전소를 건설했어야 한다. 이중 오성LNG복합발전소만 1월에 문을 열 예정이다. 다른 발전소들은 주민 민원 등으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완공이 지연되고 있다. 정부는 예비전력량이 400만㎾보다 적으면 전력 수급 경보를 발령한다. 498만㎾면 예비전력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양이다.
설상가상으로 운전중이던 원자력 발전소까지 문제를 일으켰다. 검증이 안된 부품을 사용한 것이 밝혀지고 발전소 제어봉에 균열이 발견되며 운행을 중단한 것. 김우선 전력거래소 수요예측실장은 “원자력 발전소 중단 문제는 예측하기 힘든 부분이었다”며 “원자력 발전소 5기가 정지된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블랙아웃 우려가 깊어진 지난해 말 전라남도 영광원전 3, 5, 6호기가 가동을 중단했다. 또 경상북도 울진4호기 또한 증기발생기 고장으로 전기를 만들지 못했다. 경북 월성1호기는 설계 수명인 30년이 끝났다. 이들 5개 발전소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전력량은 총 467만7000㎾ 수준. 올해 늘렸어야 하는 전기량 만큼을 오히려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지금의 전력난은 결국 지구온난화로 나날이 변덕이 심해지는 날씨와 안전불감증이 부른 부실한 발전소 관리, 이를 고려하지 못한 수급계획이 어울어진 결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