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의혹 논란` 강정원 행장 `쓸쓸한 퇴장`

by이준기 기자
2010.07.13 16:38:24

5년9개월 은행장 조기 퇴임..미국 유학길
정치권 줄대기 의혹 일파만파..당국 징계도 한몫
"리딩뱅크 입지다졌다".."은행 몸집만 불려" 지적도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새 회장과 함께 리딩뱅크의 위상을 바로잡아 주십시오"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13일 우여곡절 끝에 5년9개월의 은행장 생활을 접었다. 강 행장은 빠르면 7월말이나 8월초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아직 3개월의 임기가 남았지만 금융감독당국의 징계 등을 앞두고 더 이상의 행장직 수행은 부질없다고 판단했다. 새로 취임한 어윤대 회장이 조기에 조직을 장악할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여러모로 조기 퇴임을 결정한 강 행장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특히 현 정권 실세가 지난해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정치권에서 불거져 나오면서 좌불안석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강 행장이 국민은행을 우리나라의 리딩뱅크로 자리매김하는데 한몫했다는 세간의 평가도 적지 않다. 금융권에서는 강 행장의 공과(功過)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강 행장의 출발은 화려했다. 외국계 은행 출신으로 서울은행장을 역임했던 그가 국민은행장에 취임한 이듬해인 2005년 금융권 최초로 2조원대의 순이익을 올리는 능력을 보여줬다. 국가고객만족도(NCSI) 성적도 만년 6위에서 2위로 4단계 격상시켰다. 

국내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3대 국제신용평가 기관으로부터 국가 신용과 동일한 등급(S&P A등급, Fitch A+등급, Moody’s A2등급)을 부여받으면서 강 행장의 입지는 더욱 넓어졌다. 국민은행, 주택은행, 국민카드 합병 후 별도로 유지되던 3개 노조의 단일화에 성공, 통합 추진력도 인정받았다.

은행의 재무적 분야에서도 강 행장은 비약적인 리더십을 선보였다. 취임 전 3.26%의 연체율(2004년 9월 기준)을 0.65%(2008년말 기준)로 끌어내리는데 성공했다. 이는 당시 주요 시중은행의 연체율 중 최저 수치였다.

강 행장은 그 당시만 해도 국민은행이 우리나라 리딩뱅크로 자리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강 행장이 취임 초기와는 달리 뒤늦게 자산경쟁에 뛰어들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해외투자와 무분별한 중소기업 대출 확대로 은행의 건전성은 조금씩 훼손됐던 것이다.



그 결과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6000억원대로 내려앉으면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이는 신한·우리은행 등 경쟁사들과 비교해도 턱없이 모자란 수치다. 올 1분기 순이익 기준 국민은행의 1인당 생산성은 2000만원으로 시중은행 중 꼴찌라는 불명예를 안겼다.

지주사 전환 이후 은행에 비해 비은행부문 실적이 미진하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KB지주의 자산 95% 이상이 은행에 몰려있어 금융지주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어 회장은 최근 은행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이러한 강 행장의 경영 문제점을 인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 회장은 이날 취임식에서 강 행장을 옆에 두고 "그동안 회장 내정자 신분으로 업무보고를 받은 결과 KB금융그룹의 실상은 안타깝게도 비만증을 앓는 환자의 모습이었다"며 수술과 개혁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강 행장의 조기 퇴임은 씁씁할 뒤맛을 남기고 있다. 논란속에 이러한 결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강 행장은 최근 정가를 강타하고 있는 선진국민연대(선진연대)의 금융권 인사 개입 의혹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008년 선진연대의 후신인 선진국민정책연구원(선진연구원)의 유선기 이사장을 경영자문으로, 사무총장인 조재목 에이스리서치 대표를 사외이사로 받아들인 것은 여전히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당시 조 이사가 금융전문가 출신이 아니란 점에서 KB지주 관계자들과 다른 사외이사들이 의아해했다는 후문이다.

강 행장은 황영기 전 KB지주 회장이 조기사퇴하자, 회장직에 재도전해 `KB 수장`이라는 꿈을 이루는 듯했다. 그러나 경쟁자였던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과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이 선임 절차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중도 하차한 후 관치논란이 불거지면서 결국 쓴맛을 경험했다.

다음달 중순 발표될 예정인 금융감독원의 징계도 강 행장의 조기퇴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금감원은 지난 2월초까지 국민은행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면서 카자흐스탄 BCC은행 투자 과정의 리스크관리 규정 위반 및 적정성 여부, 10억달러 규모의 커버드본드 발행, 회계장부 오류 등을 집중 점검했다.

국민은행은 강 행장마저 중징계를 받으면 김정태 전 행장과 황영기 전 회장에 이어 `리딩뱅크 수장의 3대째 금융권 퇴출`이라는 지울 수 없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강 행장은 이미 미국 터프츠(Tufts)대 플레처스쿨에서 방문연구원 입학허가를 받은 상태다. 강 행장의 한 핵심 측근은 "아직 출국 날짜를 잡아 놓지 않은 상태"라면서도 "8월에 출국할 수도 있고 퇴임 이후 바로 출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