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부스] 다쓰나미,프랜차이즈 스타 그리고 한국야구

by정철우 기자
2007.05.29 18:19:49

[이데일리 정철우기자] 28일 주니치-니혼햄 전. 주니치 선발 아사오는 5이닝도 채우지 못한 채 강판됐고 1점대 방어율을 자랑하던 좌완 셋업 그라세스키는 갑작스런 제구력 난조로 오히려 점수차를 벌려놓았습니다.

결국 주니치는 2-7로 뒤진 채 9회말 2아웃으로 몰렸구요. 중계를 하는 입장에서 이때쯤이면 조금 허탈한 기분을 뒤로 한 채 자료들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마무리 멘트나 준비하게 됩니다. TV를 지켜보던 시청자나 구장을 찾은 팬들도 비슷한 기분이 들죠.

그러나 이날은 달랐습니다. 나고야 돔이 일순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료 치우느라 잠시 화면을 보지 못한 탓에 처음엔 '관중이라도 뛰어들었나...' 싶었습니다.

잠시 후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나오고서야 사태가 파악 됐습니다. "대타, 다쓰나미."

야구는 9회말 2아웃 부터라지만 그 상황에서 누가 나온들 경기가 뒤집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기 힘듭니다. '영원한 홈런 왕' 베이브 루스나 마지막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살아돌아온다해도 말이죠.

그러나 팬들은 하루 중 가장 열렬한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들의 함성은 다쓰나미가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난 뒤에도 한참동안 계속됐습니다. 마치 지고도 진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오치아이 주니치 감독의 속내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승부는 이미 기울었지만 팀내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선수를 내보내 팬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 씻어보자. 덕분에 침체된 분위기까지 바꿀 수 있다면...'

그처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다쓰나미나 그런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주니치 모두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다쓰나미는 1988년 주니치에 입단해 20년간 한 팀에서만 뛴 말 그대로 주니치의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신인왕과 골든글러브(5회) 베스트 나인(2회)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이 있지만 개인 타이틀은 한차례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유일의 '끝내기 만루홈런 2회'가 말해주 듯 찬스에 강한 면모는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데 큰 몫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세월의 흐름까지 막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69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39살입니다. 지난해부터는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해 주로 대타로 경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니치는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 '은퇴'란 말을 함부로 언급하지 않는 것 만으로도 예우는 충분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치아이 감독도 젊은 선수들 못지 않은 매서운 훈련을 시키는 방법으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다쓰나미도 팀의 간판 선수 답게 선 굵은 행보를 보여줬습니다. 올해 그의 연봉은 1억엔(추정.약 8억원)입니다. 지난해보다 무려 1억2,500만엔이 삭감된 금액입니다. 구단 '사상 최다 삭감액'이라는 충격적 제시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다쓰나미는 초연한 모습을 보였더군요. 일본 언론과 인터뷰서 "대타 요원에게 1억엔도 비싸다"며 "어떻게든 주전 자리를 잡기 위해 나를 버리고 훈련에 임하겠다."

히어로 인터뷰를 할때면 "언제나 성원해주는 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며 눈물을 보일 줄 아는 스타가 이런 모습까지 보여주니 사랑을 받지 않을리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쓰나미는 그의 목표대로 주전을 다시 꿰차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타율 2할8푼6리 10타점으로 대타로서 제 몫은 여전히 해내고 있습니다.

문득 우리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다쓰나미 못지 않은 프랜차이즈 스타가 있죠. 그러나 모양새는 그들의 그것과 많이 다릅니다.

천하에 없는 스타여도 나이들고 힘 떨어지면 구단이나 코칭스태프로부터 천덕꾸러기 대우를 받는 것이 우리네 현실입니다. 물론 겉으로는 함부로 하지 못하지만 뒤로는 은퇴를 언급하는데 주저함이 없죠. 언론을 통해 은퇴설이 흘러나오는 것도 백이면 백 이런 이유 때문이죠.

얼마 전 장종훈 한화 코치는 이데일리 SPN에 연재중인 자신의 칼럼에서 "처음 코치에게 은퇴 권유를 받았을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은 바 있습니다. '은퇴'란 그 누구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선수들에게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우리 야구 역사에서 연봉의 65%가 삭감되는 걸 받아들이며 선수생활을 이어가며 끝까지 부딪혀보는 경우가 몇번이나 있었던가요.

말끔한 돔 구장이나 월요일에도 3만 관중이 몰리는 팬들의 열기,일본 야구에는 여전히 부러운 것들이 많습니다. 28일 주니치-니혼햄 전은 여기에 또 한가지가 추가된 경기였습니다.

(주) [인사이드 부스]는 정철우 기자가 SBS스포츠채널에서 일본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 하며 든 생각들을 정리한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