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명의 유령법인 대포통장 1000여개 만든 일당 무더기 기소

by이승현 기자
2017.07.19 12:01:11

법인 명의 통장개설 쉬운 점 악용…노숙인을 유령법인 설립 이용
보이스피싱·인터넷도박 조직에 대포통장 팔아 7억 챙겨
총책·관리책·모집책 등 30명 기소…檢 "법인등록 심사 강화해야"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노숙인들을 건실한 사업가로 변모시켜 유령 법인을 설립한 뒤 법인 명의 대포통장 1000여개를 만들어 전자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돈을 받고 팔아치운 일당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대포통장 유통 방지를 위해 개인 명의 통장개설 요건이 강화됐지만 법인 명의 계좌개설은 상대적으로 수월한 점을 악용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이용일)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대포통장 유통조직 총책 손모(48)씨 등 16명을 구속 기소하고 노숙인 관리책 이모(35)씨 등 1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9일 밝혔다. 검찰은 달아난 유모(53)씨는 지명수배(기소중지) 했다.

검찰에 따르면 손씨 등은 지난 2012년 5월부터 올해 3월까지 노숙인 47명의 명의로 세운 유령 법인 119개의 명의로 대포통장 1031개를 발급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이나 인터넷 도박범죄 조직에 유통시켜 약 7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총책과 노숙인 모집책, 노숙인 관리책, 대포통장 유통 알선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활동했다.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서로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대화도 대포전화로 하는 등 점조직 형태로 운영했다.



검찰조사 결과 손씨는 법인을 설립하면 통장을 여러 개 만들 수 있고 이체금액도 크다는 점에 착안해 돈이 절실한 노숙인을 유령 법인의 설립자로 활용했다. 그는 노숙인 모집책을 통해 “본인 명의로 법인 1개를 설립하면 100만원을 주고 숙식도 제공하겠다”며 노숙인을 꼬드겼다. 유인된 노숙인 중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이 되지 않아 노숙생활을 한 20~30대도 다수 있었다고 검찰은 전했다.

손씨 등은 이렇게 만든 대포통장을 범죄 조직에 1개당 50만~150만원을 받고 넘겼고 매달 140만원의 수익금도 추가로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들이 약 5년간 챙긴 돈 7억원 가량을 추징키로 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2013년과 2015년 이 일당의 노숙인 관리책과 노숙인 등 22명을 붙잡았지만 손씨 등 조직 수뇌부는 인적사항을 확인하지 못해 검거에 실패했다. 검찰은 스포츠토토 관련 별건 사건을 수사하다 이 사건과 연계된 점을 파악, 경찰에 붙잡힌 공범 조사 및 대포전화 추적 등을 벌여 총책 손씨와 일당을 검거했다.

검찰 관계자는 “소액 자본금, 여러 개의 사업자등록 신청 등 유령 법인의 전형적 특성이 의심되면 사업내역 확인자료 제출과 사무실 실사 등 국세청의 법인 사업등록 신청 심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료=서울중앙지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