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의료·OTA서비스…규제 샌드박스로 첫 삽 떴다
by김응열 기자
2022.10.31 12:00:00
대한상의, 규제 샌드박스 승인과제 전수분석 발표
승인과제 88%, 해외선 됐지만 국내선 못하던 사업
중기·스타트업 신사업 물꼬, 대기업도 샌드박스 활용
[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기업의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일정기간 규제를 면제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적용으로, 국내 도입이 불가능했던 비대면 의료, 차량 소프트웨어 무선 업데이트, 공유주방 등 사업모델이 국내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샌드박스 지원센터는 31일 ‘규제 샌드박스 승인과제와 규제현황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대한상의는 지난 2020년 5월부터 규제 샌드박스 민간 접수기구로 활동하면서 기업의 규제 샌드박스 통과를 지원하고 있다.
보고서는 이달까지 지원센터를 통해 규제 샌드박스 승인을 받은 과제 184건을 전수분석했다. 이중 162건인 88%는 해외에선 가능하지만 국내에선 불가능했던 사업모델로 조사됐다.
분야별로는 모빌리티가 37건으로 가장 많았다. 공유경제(26건)가 그 뒤를 이었고, 의료(23건), 에너지(20건), 스마트기기(17건), 플랫폼(15건), 푸드테크(15건), 로봇·드론(10건), 방송·통신(8건), 기타(7건), 펫 서비스(6건) 순으로 나타났다.
규제 샌드박스로 국내에 적용된 대표적인 사업모델은 비대면 의료다. 미국, 영국, 유럽 등 선진국 중심으로 시작된 비대면 진료 사업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았지만, 한국에선 규제로 인해 사업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재외국민 국민을 대상으로 한 한국 의료진의 비대면 진료 서비스와 홈 키트(Home-Kit)를 활용해 집에서 성병 원인균 검사를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 집에서 재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스마트 기기(Smart Glove, Smart Rehab-Robot) 등이 사업의 첫발을 뗐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성과가 나왔다. 자동차 강국인 미국, 독일 등에서 차량 소프트웨어를 무선 업데이트할 수 있는 ‘OTA 서비스(Over-the-Air)’, 자율주행차량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 ‘3차원 정밀지도 서비스’ 등이 국내에서도 시작했다. 자차를 타인과 공유하는 차량 P2P(Peer-to-Peer Service) 서비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자가용을 활용해 병원까지 데려다주는 NEMT(Non Emergency Medical Transportation Service) 서비스도 국내에서 첫 삽을 떴다.
최현종 대한상의 샌드박스지원팀장은 “규제법령이 많고 이해관계자 반대로 신사업 진출이 어려운 모빌리티, 의료 분야에서 사업자들이 규제 특례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신산업이 생겨나고 있는 공유경제 분야에서도 불합리한 규제를 적용받아 샌드박스를 찾은 사례가 다수”라고 설명했다.
특히 신사업에 나서려는 스타트업·중소기업이 규제 샌드박스를 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 승인과제 184개 중 138개(75%)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신청한 과제였다.
대기업이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하는 사례도 점차 늘었다. 지난 2020년과 2021년 대기업의 비율운 18%대였으나 이달 32%대로 약 1.7배 증가했다. 실제 롯데정밀화학(004000)은 암모니아(NH3)를 수소(H2)와 질소(N2)로 분해한 뒤 질소를 제거해 수소(H2)만 추출해내는 설비를, SK루브리컨츠는 폐윤활유로 새 윤활유를 생산하는 신사업을 규제 샌드박스로 승인받았다.
대한상의의 샌드박스 승인과제 184건 중 실제 규제 개선이 이뤄진 건 41개로 22% 수준이다. 정비가 완료된 게 28개, 일부 법령이 정비된 건 13개다. 대한상의와 정부 부처는 규제 샌드박스 과제 관련 법령정비를 위해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다.
아울러 대한상의는 규제 샌드박스의 역할 강화를 위해 신속한 법령정비와 사업시행 조건 완화, 컨트롤타워 역할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규제 샌드박스가 신사업을 시작하려는 기업들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주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기업들은 해외보다 강한 규제 환경 속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며 “정부는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제도를 신속하게 정비해 혁신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