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호준 기자
2004.07.20 18:48:35
[edaily 김호준기자] "아무리 훌륭한 제도를 만들어도 악용하려고 덤비는 사람을 당해 낼 수는 없습니다." 전자공시제도를 운영하는 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4년 전에 도입된 전자공시는 투자자와 주주들에게 동일한 정보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증시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증권부 김호준 기자는 아직도 곳곳에서 허점이 발견되고 있어 제도 보안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요즘 같아서는 한 종목을 5% 이상 보유한 개인투자자는 취득 목적을 공시할 때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경영참여로 할까 아니면 투자목적으로 할까? 사실 대주주를 몰아 내는 것이 목적이라고 적어도 뒷감당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얼마전 대동금속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L씨도 한때 비슷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투자목적으로 대동금속 지분 5.25%을 장내 매수했지만 주가는 바닥을 기었습니다. 그는 "지분을 좀더 사면서 `경영참여`로 하면 주가가 좀 오르지 않겠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몇몇 개인투자자는 `경영참여성` 공시로 주가를 띄워놓고 은근 슬쩍 팔아 수십억원대 수익을 챙겼습니다. 이들은 최대주주와 소송도 불사하며 회사 경영에 관심이 있는 척 했습니다.
작전의 냄새가 진하게 나지만 공지 규정을 지켰기 때문에 처벌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분 취득목적을 `경영참여`에서 `단순투자`로 손바닥 뒤집듯이 바꿔도 현재 공시제도에서는 별다른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이죠.
심지어 지분을 팔 때도 결제일 기준 5거래일 이내에만 공시하면 되기 때문에 장기 11일까지 공시를 미룰 수 있습니다. 입 닦고 한숨 돌릴 시간까지 보장해주고 있는 셈이죠.
현행 전자공시제도의 허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할 때도 투자자들의 혼란을 겪게 됩니다. 예컨대 ㅅ전자가 자사주 10만주를 취득하기로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주당 취득 예정금액은 이사회에서 결의한 날 종가 기준으로 4만원입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자사주를 취득하면서 주가가 올라 예정금액보다 비싼 가격에 주식을 매입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취득 예정금액 기준으로 40억원 어치만 주식을 매입하면 공시 사항을 이행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자사주 취득 물량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추격 매수를 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2002년 11월15일 `공시제도 선진화 방안에 관한 공청회` 자료를 보면 현행 공시제도의 문제점이 열거돼 있습니다. 보고서에선 수시공시의 경우 실질적인 운영자는 증권거래소지만 제도 운영권은 금융감독원이 보유하고 있고 업무 중복된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공시의무 발생 뒤 의무 공시시한을 길게 잡아주고 있어 신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꼬집고 있습니다.
전자공시제도가 도입된 이후 몇차례 문제점이 제기됐지만 부분적인 보완만 이루어졌을 뿐 전반적인 개선은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제도 전체를 수정하는 것은 장기적인 과제로 맡겨야 하겠지만 몇가지 규정은 시급히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선 지분 취득목적을 변경할 때는 투자자들이 인지할 때까지 매매 제한기간을 두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지분을 5% 이상 취득할 때 보유목적뿐만 아니라 과거 5년 동안의 범죄사실 등 세세한 부분까지 기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증권거래소 담당자에 따르면 미국에선 취득목적을 변경하면 10일 동안 해당 투자자가 매매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전문가들은 지분변동과 공시의 시차를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금융감독원 담당자는 허풍 공시의 경우 부분적인 보완으로는 막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아무리 제도를 보완해도 악용하려는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다는 논리입니다. 투자자들이 허풍 공시에 현혹되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당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