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선일보 기자
2004.08.03 21:28:02
전문가들 “안테나 뾰족해 가능성”
제조업체 “상관관계 단정 어려워”
[조선일보 제공]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던 40대 남자가 낙뢰로 사망한 사건에 대해 ‘휴대폰이 벼락을 불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휴대폰 사용 도중 벼락에 맞은 것은 국내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중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 휴대폰과 벼락의 상관 관계가 국제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지난 2일 오후 5시20분쯤 전남 장흥군 관산읍 장환마을 ‘장흥 갯장어축제’ 행사장 진입로에서 벼락을 맞아 숨진 박모(46)씨는 휴대폰을 사용하던 중이었다. 당시 사고 현장에선 30분 전부터 국지성(局地性) 호우가 내리고 있었다.
벼락을 맞은 뒤 사용하던 휴대폰은 검게 그을렸다. 숨진 박씨의 왼쪽 귀 부분도 검게 그을려 있었다. 얼굴 부분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양쪽 종아리 부분도 혈관이 터져 빨간 반점이 두드러져 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 외에 별다른 외상은 없었다. 경찰은 “낙뢰 사고의 경우 통상 벼락이 처음 떨어진 부분이 검게 그을린 채 발견된다”며 “전류가 귀 부분으로 들어와 종아리 부분으로 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휴대폰을 사용하는 왼쪽 귀 부위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는 만큼 휴대폰 통화가 이번 낙뢰 사망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에서도 지난달 23일 만리장성에 오른 관광객 10여명 중 한 명이 휴대폰 통화 도중 벼락으로 집단 혼절하는 사고가 발생했었다.
물론 휴대폰 제조업계는 낙뢰사고와 휴대전화 통화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단정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휴대폰 케이스가 전기가 안 통하는 부도체(不導體)이기 때문에 벼락과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업계는 제기하고 있다. 정보통신부 산하 전파연구소측도 “휴대폰 통화 도중 벼락을 맞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며 “휴대폰에 흐르고 있는 기본적인 전류 때문에 벼락을 더 쉽게 맞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체·부도체의 여부는 벼락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벼락은 플라스틱과 같은 부도체를 타고 흐를 수 있고, 특히 휴대폰의 안테나 끝이 뾰족하기 때문에 벼락이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서울대 물리학부 박건식(朴健植) 교수는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천둥번개가 치는 날 휴대폰을 사용하다가 벼락을 맞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우산이나 골프채만큼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산이나 골프채 때문에 벼락을 맞는 경우는 종종 있어왔다. 지난달 26일 충북 제천에서 우산을 쓰고 등산을 하던 임모(51)씨가 벼락을 맞고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00년 7월 지방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하던 한 대학교수가 낙뢰에 맞아 숨진 적도 있다. 지난 93년에는 골프를 치던 전 장관 부인이 금목걸이에 벼락이 떨어져 중화상을 입고 실신한 후 치료를 받다 숨진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