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로 읽는 암호화폐] 비트코인, 기후변화와의 공존

by이정훈 기자
2021.05.25 13:24:23

反환경적 프레임…기후변화·ESG에 궁지 몰린 비트코인
빌 게이츠 "가장 많은 전기 소비" 촉발에 머스크도 가세
비트코인 하나 채굴 탄소배출량, 유튜브 5만5천시간 수준
북미·북유럽 재생에너지 채굴 늘어…에너지 효율화도
도이체 "이미 77%가 재생·원자력"…기후변화와 공존 진행

일런 머스크 테슬라 CEO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지금 돌아보면 비트코인이 채굴과정에서 너무 많은 전기를 사용한다며 전기차 결제를 난데없이 막아 버린 지난 12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발언이 비트코인 가격 하락을 알리는 전조였던 셈입니다. 이후 중국 당국이 비트코인 채굴부터 유통 및 거래, 부가서비스까지 모두 차단하겠다며 철퇴를 날린 게 결정타가 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랬던 머스크 CEO가 간밤엔 또 한번 가상자산시장에 심폐소생을 해댔습니다. 북미지역 비트코인 채굴업체들이 채굴과정에서 필요한 막대한 에너지 사용량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표준화하는 협의체를 만들었다고 한데 대해 머스크는 지지 의사를 밝히며 “이런 계획은 잠재적으로 (비트코인에) 유망하다”고 언급한 것이죠.

사실 머스크 CEO에게 묻히진 했지만, 그보다 앞서 두 어달 전부터 `비트코인이 반(反)환경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인물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였습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인류에게 알려진 그 어떤 다른 방식보다도 더 많은 거래당 전기를 소비한다”며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이 더 인기를 끌수록 그것은 더 많은 탄소발자국(=개인이나 기업 등이 활동이나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 이슈가 가장 중요해진 때에 비트코인은 기후변화 문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고 지적했죠.

맞는 얘깁니다. 사실 비트코인은 작업증명(PoW)을 통해 보상하다 보니 채굴과정에서 막대한 전기를 소모하는 문제를 가집니다. 비트코인은 모든 네트워크 내 참여자가 블록 내에 들어가는 암호를 풀고 거래내역을 공공 장부에 기록하는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며, 이 암호를 풀려는 참여자가 많아지면 연산 난이도가 높아져 더 많은 컴퓨팅 파워를 가져야 하고, 이는 많은 전기 소모로 이어집니다. 특히 다수의 비트코인 채굴업체들은 중국을 거점으로 하고 있는데, 이때 사용하는 전기도 대부분 화석연료를 이용하니 자연스레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겁니다.

세계 각국과 비트코인 탄소 배출량 비교 (2019년 기준, FT)


실제 시장데이터업체인 디지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하나의 비트코인을 채굴해 거래하는데 필요한 탄소 배출량은 73만5121건에 이르는 비자카드 거래 처리나 5만5280시간의 유튜브 시청에 맞먹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 한 해 비트코인이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량은 뉴질랜드와 아르헨티나가 전체 국가 차원에서 한 해 배출하는 양과 비견할 만하다고 하니 엄청난 셈이죠.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기후변화, 탄소중립, 재생에너지와 같은 이슈는 단순한 환경 차원을 넘어 글로벌 경제와 산업의 핵심 화두가 되고 있구요. 이는 최근 글로벌 경영 및 투자분에서 최대 화두가 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에서도 가장 핫한 이슈이기도 하다 보니 비트코인과 기후변화와의 반목과 갈등은 비트코인 스스로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 억만장자 투자자이자 유명 TV 방송 진행자이기도 한 케빈 오리어리는 최근 미국 경제매체 CNBC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에 투자하고자 했던 기관투자가 10% 정도가 ESG에 대한 우려로 인해 투자를 포기했다”고 전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기관투자가들과 기업들을 실질적 투자자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비트코인이 가지는 환경에 부정적이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주류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이 비트코인 등 대규모 채택(Mass Adoption)하도록 하기 위해 가상자산업계에서 이미 보다 친환경적인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단 노아 스미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와 같은 인물들은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더이상 작업증명이 아닌 지분증명(PoS)과 같이 에너지 집약도가 낮은 보안 메커니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더리움2.0이 지분증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고, 테조스나 코스모스 등 여러 블록체인이 지분증명 모델을 성공시킨 만큼 중장기적으로 고려해 볼 순 있겠지만, 당장 비트코인의 근간을 뜯어 고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현실적인 대안은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되는 에너지원을 클린한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친환경 비트코인’에 대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거 한때 10%도 채 안되던 중국 이외 지역에서의 비트코인 채굴이 지금은 30~40% 안팎까지 늘어났고, 이들 중엔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수력발전, 노르웨이에서는 지력발전을 주로 활용하는 마이닝풀이 가동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수력발전으로 알루미늄 제련공장이 모였던 뉴욕 머시나 같은 지역에선 공장이 철수한 곳에 비트메인이나 라이엇 블록체인 등이 들어오면서 재생에너지로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있습니다. 최근 도이체방크가 내놓은 자료에서는 전 세계 비트코인의 최대 77.6%가 재생 및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하고 있다고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지난 3월 코인쉐어에 의해 1차 투자가 완료된 민트그린과 같은 업체는 채굴 효율을 극대화해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채굴과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을 이용해 위스키를 숙성하거나 염전의 수분을 증발시키는 부수적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주요 지역에서의 비트코인 채굴 비중 및 재생에너지 비중 (도이체방크)


이런 가운데 3월 말 아르고와 DMG는 재생에너지로만 가동되는 새로운 비트코인 마이닝풀을 개발하기로 합의했는데요. `테라 풀(Terra Pool)`이라는 채굴사업을 런칭하면서 이 마이닝 풀은 수력발전으로 운영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역대 처음으로 `그린 비트코인`을 만들어내는 한편 비트코인 채굴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분명한 로드맵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외에도 최근 미국 투자회사인 시티(Seetee)도 “비트코인 채굴에 신재생에너지 자산을 활용할 계획”이라며 자신들이 투자하고 있는 풍력과 수소전력, 태양광 발전 등을 비트코인 채굴에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트위터 공동 창업주이자 스퀘어 최고경영자(CEO)인 잭 도시 역시 탄소 배출이 없는 청정한 비트코인 채굴기술을 개발하는데 쓰도록 자신이 가진 자산 1000만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간밤 비트코인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미국 소프트웨어업체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마이클 세일러 CEO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미 주요 채굴업체들이 머스크 CEO와 만나 북미지역 비트코인채굴협의회(Bitcoin Mining Council)를 구성하기로 했다는 점이 기쁘다”고 밝힌 것도 비트코인에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은 비트코인 채굴에서의 에너지 사용 투명성을 촉진하고 전 세계에 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를 가속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아직도 석탄화력발전을 주로 활용하는 중국 채굴업자들이 대세로 남아있는 만큼 비트코인이 환경에 가하는 피해는 여전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가상자산업계 스스로가 이런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만큼 비트코인과 가상자산에 대한 인식은 서서히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일러 CEO도 “앞서 중국 정부가 비트코인 채굴 및 거래를 단속하기로 한 것도 따지고 보면 비트코인 채굴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 배출 문제를 획기적으로 절감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하면서 “중국발(發) 불확실성을 줄이고 가상자산 산업이 ESG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가치는 다시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다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업계 스스로가 비트코인과 가상자산이 시장에 더 적극 침투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탄소 배출 감축 효과를 적극 알리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금융결제업계에서는 비자나 마스터카드와 같은 초대형 카드사부터 페이팔, 벤모, ACH, 스위프트, 페드와이어, 웨스턴유니온, 머니그램 등 여러 금융사들이 독자적으로 거대 지급결제 네트워크들을 가동하고 있는데, 이들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블록체인 기반으로 대체된다면 전기 사용이나 탄소 배출에서의 막대한 감소 효과를 노려볼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채굴과정에서의 전기 사용을 친환경적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제3자(third party)를 배제한 이상적인 비트코인 모델 자체가 친환경을 지향한다는 얘기죠. 아직 갈 길은 멀지만, 비트코인과 가상자산이 기후변화와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이미 열려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