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피어난 원초적 자연

by오현주 기자
2012.06.13 16:21:02

박영남 `달의 노래` 전
핑거페인팅 기법으로
`흑과 백`의 하늘 표현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6월 13일자 35면에 게재됐습니다.
▲ 박영남 `하늘에 그려본 풍경`(사진=가나아트센터)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붓 대신 손으로 그린다. 캔버스에 물감을 붓고 직접 반죽하듯 개 나가는 그림. 이른바 `핑거 페인팅`이다. 이는 추상화가 박영남(63)의 작업이다.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잘 알려진 그가 전시를 열었다. `달의 노래` 전이다. 2006년 이후 6년 만인 13번째 개인전이다. 전시제목에 걸맞게 달빛을 기다리고 그 음률을 뽑아내는 작가의 순수한 내면을 드러낸 자리다.

주제는 자연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추상으로 단순화된 자연의 풍경이다. 사각형과 원, 수직선과 대각선 등 기하학적 형태로 구현한 장엄한 풍광을 내보인다. 손끝으로 빚은, 촉각의 공감대가 살아 있는 구조적 조형일 수도 있다.

작가는 20대이던 1970년대부터 국내외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한국 추상회화의 계보를 이어왔다. 1992년엔 김수근문화상도 받았다. 무엇보다 자연 풍경을 선과 색채의 형태로 녹여내는 화가로 평가받는다. 다소 몽환적인 색감과 견고한 구도를 통해 순수한 미적 정서를 전달해온 터다. 자연광을 머금은 색채의 구상적 표현이 그의 강점이다.



다만 이번 전시에서는 색채 대신 `흑과 백`에 방점을 찍었다. 점점이 색채 포인트를 넣은 작품조차 선 굵은 흑과 여백 같은 백의 무게감에 묻히고 마는 압도감을 표현했다. 이 중량감은 그대로 `하늘에 그려본 풍경(Landscape against Blue Sky)` 연작에 실렸다. 가로 400cm, 세로 250cm에 달하는 대작도 여러 점이다. 말 그대로 거대한 서사적 풍경이다.

작가는 순간의 직관에 의지해 작업한다. 이는 재료나 기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물감을 캔버스에 붓고 손으로 그려내는 데는 빠른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수용성 아크릴물감은 15분이 지나면 마르기 시작, 30분이 지나면 굳어버린다.

그 직관 덕분에 얻게 된 것은 절제된 색면 분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지 않은 긴장 넘치는 생동감이다. 비정형의 색면과 그 위를 가르는 균열의 선. 결국 작가는 자연을 품고 있는 면에 그은 선으로 해체와 이완을 반복하며 근원적 자연에 접근해간다.

“손가락으로 그린다는 것은 결국 나의 몸짓이고 이 몸짓은 본능에 의존하는 원시적 행위다.” 가장 원초적 형태로 가장 근원적 자연에 도달하고자 한 작가의 근작 회화 50여점을 볼 수 있다. 7월1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