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가니 이번엔 ‘과수 흑사병’…천정부지 과일값 더 오르나

by이명철 기자
2021.05.24 13:51:59

4월부터 발생하며 시기 앞당겨져…남양주서 첫 확진
사과·배 등 수급 불안에 가격 상승세…피해 영향 우려
농진청, 위기경보 ‘주의’→‘경계’ 상향…예찰·방제 강화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잠잠해지자 식물 전염병인 과수화상병이 확산할 조짐이다. 예년보다 높은 봄 기온에 발생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농가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최근 사과·배 등 과일 가격이 고공행진 중이어서 과실 피해가 커질 경우 가격이 더 오를 공산이 크다.

지난해 6월 20일 과수화상병 확진 판정을 받은 충북 충주시 산척면의 한 과수원에서 매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농촌진흥청은 과수화상병이 미발생 지역에서 발생하고 의심신고가 증가함에 따라 ‘병해충 위기단계별 대응조치’에 의거해 22일부로 위기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조정했다고 24일 밝혔다.

‘과수 흑사병’으로도 불리는 과수화상병은 금지병해충에 의한 세균병으로 주로 사과·배 등 장미과 식물에서 발생한다. 감염 시 잎·꽃·가지·줄기·과일 등이 붉은 갈색 또는 검정색으로 변하며 마르는 증상을 보인다. 치료약제가 없고 전파력도 강해 발생 시 피해가 큰 편이다.

23일 기준 5월 한달간 과수화상병 확진 농장은 68곳(50.3ha)이다. 확진 농장은 지역별로 경기 안성(22곳)·평택(2곳)·이천(1곳)·남양주(1곳), 충북 충주(38곳)·제천(3곳)·음성(2곳), 충남 천안(19곳) 등이다.

과수화상병은 2015년 국내 처음 유입된 후 통상 5~6월에 발생했지만 올해 들어 처음으로 4월에도 검출되는 등 발생 시기가 빨라졌다. 겨울철 기온이 상승했고 3~4월 평균기온이 높아 나무 궤양에 숨어 있던 병원균이 일찍 활동했기 때문으로 농진청은 분석했다. 적과작업 등 농작업을 진행하면서 농가의 자가 예찰에 따른 신고도 증가세다.

5월 확진건수는 지난해 5월(82농가)보다는 적은 수준이지만 지난해의 경우 대부분 전수 조사를 실시한 반면 올해는 의심신고 위주로 진행해 감소세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특히 기존 발생 지역이 아닌 경기 남양주시에서도 1건이 확진됐다. 남양주 발생농장 100m 이내 1개 과원은 의심증상이 없고 병이 발생한 와부읍 72농장에 대해 추가 예찰을 실시하고 있다. 인근도 의심신고를 접수 중이지만 대부분 현장에서 과수화상병이 아닌 것으로 음성 판정되고 있다.

허태웅(왼쪽 첫번쨰) 농촌진흥청장이 지난 23일 과수화상병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농진청)
지난해 과수화상병 피해가 가장 컸던 만큼 올해 과수 농가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과수화상병은 744건으로 전년(188건)대비 295.7%(556건) 급증한 바 있다.

최근 사과·배 등 주요 과일은 이상 저온 등 기후 변화 영향으로 작황이 부진해 수급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코로나19로 가정 내 음식료품 수요가 늘었지만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가격이 상승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도 5월 농업관측을 통해 사과·배 저장량 감소에 따른 출하량 부족으로 가격이 강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1일 기준 사과(후지·상품) 평균 도매가격(kg당)은 6524원으로 평년(지난 5년간 최대·최소가격을 제외한 평균 금액) 4253원보다 53.4% 올랐다. 배(신고·상품) 도매가격(kg당)은 평년(3196원)보다 69.1% 급등한 5403원이다.

과수화상병 확산으로 과수원 매몰 등 방역 조치를 적용할 경우 수급 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농진청은 과수화상병 위기경보 단계 상향에 따라 대책상황실을 발생 시·군 중심에서 각 도(제주 제외)와 사과·배 주산지 시군, 발생 인접 시군에 확대 설치·운영한다. 확산방지를 위한 긴급예찰과 매몰 지원, 사후관리 등 공적방제를 추진할 예정이다.

다음달 14~25일에는 발생지역을 비롯한 특별관리구역(10개시군) 등 전국의 사과·배 농장을 대상으로 예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과수화상병 발생이 많고 상시발생이 우려되는 지역은 병의 증상과 간이진단을 통해 예찰·신고 즉시 현장 확진과 방제작업을 진행 중이다.

농진청은 그간 과수화상병 대처를 해온 만큼 올해는 지난해와 같은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월동기인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과수농가·지방자치단체와 예방·예찰 활동을 강화했으며 발생지역과 특별관리구역에 대한 사전 방제를 실시했다.

농진청 관계자는 “과수화상병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해온 만큼 올해는 과수화상병 발생이 줄어드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적과, 봉지씌우기 등 농작업시 증상을 발견하면 즉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