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물든 정치인 테러…박근혜부터 배현진까지

by김유성 기자
2024.01.26 16:14:15

박근혜·송영길, 당 대표 시절 유세 도중 테러 당해
시민들과 거리 가까워지는 선거철 테러 위험 ↑
이낙연 "제로썸 사회 쌓인 증오감이 더 커져"
총리 피살 경험 있는 일본, 정치테러 빈발 고민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괴한에게 피습을 당했다. 백주 대낮에 제1야당 대표가 무방비로 괴한이 칼날에 노출됐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 지난 25일에는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테러를 당했다. 여성 의원이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사실 정치인들은 테러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 얼굴이 알려진데다 낯 모르는 누군가와 늘 대면해야하기 때문이다. 선거 때처럼 유권자와 가까이 만나는 시기에 그 위험은 더 높아진다. 일본 최장기 총리로 재임했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도 2022년 7월 자민당 선거 유세 도중 괴한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25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거리에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행인으로부터 머리를 가격당했다. 배 의원은 둔기로 추정되는 물체에 맞았으며, 피를 흘려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졌다. 사진은 배현진 의원 피습관련 CCTV 화면. (사진=배현실 의원실)
선거 유세 도중 정치인이 테러를 당한 사례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가까이로는 2022년 3월 7일 송영길 당시 민주당 대표가 당했던 테러가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선거 지원 유세를 나섰다가 장도리로 추정되는 둔기로 후두부를 강타 당했다. 강경 민족주의자로 추정됐던 피의자는 송 대표를 가격하고 “한미 군사훈련을 반대한다”고 소리쳤다.

지난 2006년 5월 20일에 일어났던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피습도 선거유세 도중 일어났다. 시민들과 악수를 하던 도중 근거리에 있던 피의자가 커터칼로 박 당시 대표의 얼굴을 그었던 것. 깊이 1cm 이상 길이 11cm 이상의 자상을 입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병원에 입원했고 응급 조치를 받아야 했다.

여성 정치인으로 얼굴에 큰 자상을 입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충격을 받았다. 박근혜 당시 대표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었고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재명 대표도 총선을 염두에 둔 행보를 하다가 테러를 당했다. 지난 2일 부산 방문 현장에서 괴한의 피습을 받았던 것. 피의자는 이 대표의 목을 노렸다. 이 대표의 지지자들과 취재진이 운집해 있던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목 부위 급소를 찔릴 뻔 했지만 천운으로 이 대표는 목숨을 건졌다. 열흘 뒤 당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2006년 5월 피습 후 회복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사진=뉴시스),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에 공격당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연합뉴스)
정치권에서는 최근 빈발하고 있는 정치 테러가 ‘극단의 대립 정치’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속히 서로를 적대하는 극단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정치권 모두가 각별히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영입위원장은 우리 사회내 내제된 증오심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경제 성장이 멈추면서 제로섬 사회가 됐고, 경쟁이 더 격렬한 사회가 됐다”며 “그런 가운데 좌절감을 느낀 사람들이 상대에 대한 증오감을 더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분석과 별개로 정치인의 테러가 선거 흥행과 그들의 입지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6년 테러 이후 선거를 승리로 이끌면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호칭을 듣게 된다. 유력한 대권후보로 언급됐고 대통령에 취임하게 됐다.

물론 ‘대전은요?’라는 박 전 대통령의 어록이 회자되면서 민심을 얻었던 이유가 크다.

일본 정치권도 테러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지난해 4월 23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한 20대 남성이 사제 폭탄을 던졌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총기 테러로 사망한지 7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일본 정치권은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 사제폭탄을 던진 범인이 검거되는 장면 (사진=NHK 캡처)
일본은 그 전에도 여러 정치 테러가 있어다. 총리를 비롯해 유력 정치인이 희생되곤 했다.

아베 전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1960년 7월 괴한에게 허벅지를 찔리는 중상을 입었다. 같은 해 10월에는 일본사회당 소속 정치인 아사누마 이네지로가 TV 연설 도중 극우 성향 17세 소년에게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이 장면은 전국에 생중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