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차별은 평등 원칙 위배"…法, 동성부부 건보 피부양자 자격 인정(종합)
by박정수 기자
2023.02.21 13:46:13
동성부부, 건보 피부양 자격 소송…1심 패→2심 승
"사실혼과 달리 취급해 차별…평등 원칙 위배"
1심과 마찬가지로 동성부부 사실혼 관계는 불인정
"성소수자 마땅한 권리 누리길"…시민단체, 동성혼 법제화 촉구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동성 부부가 배우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달라며 낸 행정소송 항소심에서 법원이 동성 부부 손을 들어줬다. 사실혼 배우자와 차별해 피부양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2심에서도 동성 부부의 사실혼은 인정하지 않았다.
| 결혼 5년차 동성부부 소성욱 씨와 김용민 씨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상대 보험료 부과 취소 처분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후 입장을 말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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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고등법원 행정1-3부(재판장 이승한)는 소성욱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소씨와 김용민씨는 2013년부터 교제해 2019년 결혼했다. 김씨는 2016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됐으나 소씨는 건강 문제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 2018년 12월부터 건강보험 지역가입자가 됐다.
2020년 2월 김씨는 다른 이성 부부와 같이 동성 커플도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지 민원을 접수했고 건보공단 측은 피부양자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이를 통해 소씨는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고 보험 급여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들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자 건보공단 측은 ‘착오처리’였다며 2020년 10월 피부양자 인정요건 미충족을 이유로 그동안 피부양자로서 내지 않았던 보험료를 내라는 처분을 했다. 이에 소씨는 “사실혼 배우자는 피부양자로 인정하면서 동성 배우자는 피부양자에서 제외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2021년 2월 행정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했다. 현행법 체계상 동성인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혼 관계로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1심 재판부는 특히 “동성 간의 결합이 남녀 간의 결합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없다”며 “이성과 동성의 결합을 달리 취급하는 것 자체로 헌법상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도 사실혼의 성립요건인 혼인 역시 남녀의 결합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사실혼 관계가 인정된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평등의 원칙에 따라 행정 처분을 해야 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법 개정으로 적용대상자에 대한 표현을 ‘피부양자’로 변경하면서 배우자에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한다는 내용을 삭제한 상태”라며 “또 피부양자의 범위에 법률이 정한 가족 및 부양 의무의 범위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민법상 가족이 아니거나 부양의무가 없는 경우(계부모, 배우자 부모 등)에도 소득이 없으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재판부는 또 “건보공단은 사실혼 배우자와 동성 결합에 대해서는 달리 취급하고 있으나 두 집단이 정서적·경제적 생활공동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없다”며 “이성인지 동성인지에 따라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대우에 해당한다”고 봤다.
아울러 “건보공단이 차별대우를 정당화하는 합리적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입증을 하지 않고 있으며 양자를 달리 취급할 합리적 이유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없다”며 “이 사건 차별대우는 평등의 원칙에 위반하는 자의적 차별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원고 측 대리인 박한희 변호사는 “동성 배우자라는 이유로 국가가 법적 권리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선례가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성별 이분법을 이유로 누군가 차별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선례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네트워크 등 인권단체는 동성혼의 법제화를 촉구했다.
인권단체 측은 “오늘 사법부가 성소수자 가족의 차별 상황을 인정하고, 성소수자 가족들이 평등한 삶을 누리기 위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우리가 나아갈 길에 한 단계 디딤돌을 놓은 판결”이라고 했다.
이어 “이미 많은 성소수자들이 마땅한 권리를 누리길 요구하고 있다. 준비가 안 된 것은 정치권이고 국회”라며 “모든 성소수자가 혼인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더 큰 싸움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