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기성 기자
2004.12.20 20:18:37
LG그룹, 증자 참여 거부의사 공식 통보
채권단-LG 분담액 놓고 막판 딜 나설듯
"LG카드 청산 가능성 낮다" 지배적 시각
[edaily 김기성기자] LG카드(032710) 정상화를 위한 총 1조2000억원 규모의 증자를 둘러싸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채권단과 LG그룹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데 일단 실패했다.
LG그룹은 20일 "LG카드 증자 실행이 어렵다"는 거부의사를 공식 문서로 전달했다. 이에 따라 LG카드 증자 문제는 해결 시한을 열흘도 채 남겨두지 않은 채 `시계(視界) 제로` 상태로 계속 치닫고 있다.
LG카드 이사회는 오는 29일로 잡혀 있고, 채권단과 LG그룹은 이날까지 증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LG카드는 상장 폐지는 물론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ABS(자산유동화증권) 상환요구등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리게 된다. 금융시장 혼란도 불을 보듯 뻔하다.
아직까지 채권단과 LG그룹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양측이 이제부터 본게임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LG그룹, 증자 참여 거부..타협점 찾기 실패 = LG그룹은 이날 오후 (주)LG 강유식 대표이사 부회장 명의로 LG카드 증자에 대한 사실상 거부 의사를 채권단에 공식 통보했다.
LG그룹은 공식 문서에서 "지난달 25일 산업은행의 LG카드 경영정상화 지원 공문을 접수해 LG카드 유동성 지원에 참여한 LG계열사와 개인 대주주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고 설명했으나 출자 전환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해 온 곳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출자전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시장 원리에 부합되지 않으며, 그동안 기업설명회 등에서 시장과 약속한 것에 저촉돼 향후 경영투명성, 신인도 저하 및 소송제기 가능성 등도 우려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채권단은 지난달 25일 LG그룹에 당초 8750억원의 출자 전환을 요구했었으나 지난 10일 여기서 1000억원 가량 낮춘 7700억원으로 수정 제안했다.
LG그룹은 또 채권단이 또다른 LG카드 정상화 방안으로 요구한 `캐시바이아웃(CBO)`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청산시 회수율을 적용해 총 1조1750억원의 채권을 2600억원에 넘기라는 채권단의 CBO 방안에 대해서도 역시 사실상 거부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채권단, 늦어도 22일까지 대응책 마련 논의 =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LG그룹이 거부 의사를 밝혀옴에 따라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채권단은 늦어도 22일까지 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나종규 산업은행 이사는 "채권단 단독으로 지원하지 않는다는 종전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채권단 회의에서 LG카드 청산 등 대응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최용순 LG카드 경영지원단장은 LG카드 청산 가능성에 대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채권단의 의지와 상관없이 LG그룹의 의사로 청산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며 "그러나 채권단이 현재까지는 청산작업에 착수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싸움의 핵심은 `분담액`..본게임 진입했나 = 채권단이 LG그룹에 요구한 출자전환 7700억원은 LG계열사의 후순위전환사채 전환용 채권 5000억원과 개인 대주주 보유 채권 2700억원이다.
채권단은 LG 계열사가 후순위전환사채로 전환하기로 한 채권은 이미 이사회 의결을 거쳤기 때문에 출자전환으로 다시 의결받기가 어렵지 않고, 대주주 채권은 도덕적 책임 분담 차원에서 반드시 출자 전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LG그룹은 이날 공식 문서에 밝혔듯이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출자 전환을 거부하고 있다. LG 계열사중 각각 1000억과 1500억원의 기업어음(CP)를 보유하고 있는 LG전자와 LG화학은 이미 지난 15일 이사회 간담회에서 출자전환 요구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LG그룹이 끝까지 모른 척 하고 버틸수는 없는 입장이다. LG 계열사들이 잇따라 간담회를 통해 `출자전환 거부`를 표명하고 나선 것은 출자 금액을 낮추는 등 협상을 좀더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세몰이용`이라는 분석이 많다. 확정적 의결이 아닌 간담회 형식으로 거부 입장을 밝힌 것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더한다.
따라서 LG그룹의 출자 전환 규모와 관련, 결국 후순위전환사채 5000억원을 넘는 `알파` 범위를 놓고 채권단과 LG그룹이 막판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은 여전히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LG그룹과 채권단 모두 과거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결국 진통 속 타협을 통해 갈길을 찾을 것"이라며 "협상의 전략상 보더라도 이제부터 타협점을 찾기 위한 본게임에 들어간 게 아니겠냐"고 진단했다.
◇LG카드, 청산까지 갈까 = LG카드 자본확충을 결정해야 하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는 29일까지 1조2000억원의 증자가 확정되지 못하면 내년 상장 폐지는 물론 신용등급 하락으로 2조원대의 ABS 상환요구가 잇따르면서 현금서비스 중단과 부도 상황이라는 1년전 상황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금융감독당국의 적기시정조치에 이은 청산으로 가는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LG카드 이사회는 29일로 잡혀있다.
그러나 LG카드가 청산될 경우 LG그룹과 채권단이 막대한 손실을 입는 만큼 그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LG카드 실사를 맡은 딜로이트앤투시의 자료에 따르면 채권단은 LG카드가 정상화될 경우 3조7900억원을 회수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청산될 경우 1조9500억원을 회수하는데 그친다. LG카드가 청산되면 1조8400억원의 손실을 입게 되는 셈이다.
LG그룹은 출자 전환을 하면 향후 7500억원을 회수할 수 있는 반면 청산할 경우에는 2600억원만 회수해 결국 4900억원의 손실을 입는 것으로 계산됐다. 이 뿐만 아니라 그룹의 상징인 `LG` 브랜드의 심각한 이미지 타격은 더 큰 부담이다. 도덕적 비난도 마찬가지다.
정부 역시 고민이다. 청산으로 가면 금융시장 혼란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LG카드가 청산되면 개인과 연기금, 금융회사 등이 보유한 채권은 대부분 휴지조각이 된다. 그 피해액은 줄잡아 13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187만개에 달하는 LG카드 가맹점도 당장 타격이고, 예측 불허의 신불자 문제도 고민거리다. 이 때문에 LG그룹의 출자 전환을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정부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을 경우 금융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막판 압박과 중재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전망이다.
한편 박해춘 LG카드 사장은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자본확충은 LG그룹과 채권단 모두에 분명히 이익이 되는 일"이라며 LG그룹의 참여를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