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원전 르네상스’ 빛 볼까…韓기업 참여 기대감 커져
by김형욱 기자
2025.05.26 14:53:30
2050년까지 원전 용량 4배 확대 목표로,
원전 규제 완화 등 4개 행정명령에 서명
높은 발전단가 경쟁력 불확실성 있지만,
활성화 땐 韓기업 공급망 참여기회 확대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자력발전소(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4배 늘린다는 목표와 함께 지난 23일(현지시간) 규제 완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기대감을 모아 온 미국이 ‘원전 르네상스’를 본격화한 것이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원전 건설 지원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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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사실상 탈(脫)원전 상태였던 미국이 다시 원전 확대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며, 한국 기업의 참여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미국은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를 계기로 오랜 기간 사실상 탈원전 상태를 유지해 온 만큼 공급망이 온전치 않고, 한국은 현재도 활발히 원전을 짓고 있는 만큼 ‘윈-윈’이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원전 관련 행정성명은 총 4건이다. 원자력규제위원회(NRC) 개혁과 에너지부 내 원자력에너지 관련 연구 개혁, 연방정부 토지 내 원전 건립 추진, 미국 내 우라늄 채굴 및 농축 확대 명령이다. 강화된 자국 원전 규제가 원전산업을 약화했다고 보고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원전 건설의 원조격 국가이지만 최근 그 명맥이 끊긴 상황이다. 1954년 시핑포트 원전을 시작으로 총 133기의 원전을 지었으나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지어진 원전은 2기뿐이다. 현재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총 97기가와트(GW) 규모의 원전 94기를 운영 중이지만, 1979년 이후 추진돼 완공된 원전은 2023~2024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보글 3·4호기뿐이다.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충격이 가셨을 무렵인 2012년 추진된 사업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로 원전사업 전반의 확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 사이 미국 내 전력량 중 원전 비중은 17.8%(2024년 기준)까지 줄었다.
| | 미국 보글 원전 1~4호기 전경. (사진=조지아파워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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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계획대로 원전 용량을 4배로 늘린다는 계획을 추진한다면, 이는 곧 25년 내 1GW급 대형 원전 기준으로 300기를 더 짓는 규모가 된다. 용량이 더 작은 소형모듈원자로(SMR)라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원전을 지어야 한다.
이론상으론 실현 가능한 계획이다. 1950~1970년대에도 원전 133기를 상업운전하는 데까지 걸린 기간이 25년이었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미국 원자력 산업은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겪었으나 마침내 ‘원전 르네상스가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을 장담할 순 없다. 그 사이 발전원으로서의 경쟁력이 약화했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연례 에너지 전망 보고서가 추산한 미국의 에너지원별 발전단가(LCOE)를 보면 원전은 1메가와트시(㎾h)의 전기를 만드는 데 190~284달러가 든다. 미국 기준으론 경제성을 확보한 대규모 태양광(29~60달러)이나 육상풍력(27~54달러)는 물론 석탄화력발전(92~210달러)이나 천연가스 화력발전(45~228달러)보다 비싼 에너지원이 된 것이다. 미국에선 대량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을 빼면 원전이 경제적으로도 실익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7년 VC 서머 원전 프로젝트가 90억달러의 막대한 손실과 함께 중단되고, 2023년 누스케일의 미국 내 첫 SMR 상용화 프로젝트가 중단된 배경에도 미국 내 엄격한 규제와 함께 경제성 악화가 있었다. 미국은 공공 주도로 이뤄지는 한국 전력산업과 달라 민간 발전기업이 상업적 이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 사업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테라파워, X에너지, GE히타치, X에너지, 홀텍, 오클로(Oklo) 등 다수의 SMR 기업이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SMR 상용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만큼, 트럼프의 규제 완화와 맞물려 시너지를 낼 가능성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신규 원전의 인허가 기간을 18개월 이내로 단축시킨 만큼, 이들 프로젝트에 속도가 나서 수익성도 함께 개선될 수 있다. 인공지능(AI) 보급 확대로 대량의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다는 것도 미국의 원전 르네상스를 뒷받침하는 배경이다.
미국의 원전 르네상스가 현실화한다면 한국 원전기업의 참여 확대도 기대된다. 미국엔 이미 웨스팅하우스란 대형 원전 기업이 있고 SMR 선도기업도 다수 있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처럼 K-원전이 직접 프로젝트를 맡아 수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이들 기업과의 협력을 토대로 공급망 전반에 참여할 기회는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 | 황주호(오른쪽)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 23일 미국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오클로(Oklo) 관계자와 4세대 SMR 기술개발을 위한 업무협약 후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한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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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팅하우스는 오랜 자국 원전 신규건설 부재 속 전체 프로젝트를 아우르는 공급망이 약해진 탓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이미 유럽 등지의 해외사업 진행 과정에서 현대건설(000720) 등 한국 기업과 손잡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034020)도 누스케일·X-에너지 등 미국 SMR 기업과 협력 중이다.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 역시 오클로 등 미국 SMR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발표에서) 주목할 점은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 착공이라는 대담한 목표를 제시했다는 것”이라며 “실현된다면 국내 원전 밸류체인에는 그동안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내 신규 원전 건설을 하려면 한국 기자재 공급망과의 협력은 필수”라며 “미국 내 원전산업의 무게중심이 SMR로 옮겨가더라도 한국 원전 공급망의 수혜 폭은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