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더라도 먹고 살아야”…살인적 폭염에도 거리 나선 노인들

by김형환 기자
2024.08.07 15:04:37

온열질환자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땡볕에 박스 줍는 노인들…“할 일이 이것뿐”
거리서 생선 팔고 전단 나눠주는 노인들도 취약
전문가 “폭염에 몰려…질 높은 일자리 필요”

[이데일리 김형환 정윤지 기자] “이렇게 폐지를 줍다가도 ‘핑’하고 어지러울 때가 자주 있어요.”

강서구 화곡동에서 만난 이경문(79)씨는 쏟아지는 땀을 닦아내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이날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폐지를 주워 3400원을 벌었다. 이씨는 “박스를 얻어가는 가게에 매번 가는 시간에 안 가면 다른 사람이 가로채 박스를 구할 수 없다”며 “낮에 나와 일하다 어지러울 땐 그늘에 가서 대자로 누워 쉬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일 폭염이 이어지면서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지만 7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된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폐지를 줍거나 노상에서 물건을 파는 노인들은 쓰러질 정도로 덥지만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빈곤을 겪는 노인들이 폭염 속 일자리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질 높은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서구의 한 재활용 업체에서 노인이 모아온 폐지를 팔고 있다. (사진=김형환 기자)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5월 20일부터 지난 5일까지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17명으로 기록됐다. 온열질환자는 누적 1810명으로 이 중 65세 이상 고령층이 589명(32.5%)에 해당한다.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가 전체 인구의 19.5%(지난달 10일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온열질환에 고령층이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온열질환 위험도가 높은 노인들은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일은 바로 폐지 줍기. 이들은 리어카를 끌고 골목 곳곳을 다니며 재활용품을 찾고 있었다. 연신 수건으로 땀을 훔치던 이들 대부분은 일정 시간 일을 한 뒤 그늘 또는 시원한 곳으로 찾아 2~3분 간의 짧은 휴식을 했다. 이들은 이렇게 일을 해야 적게는 3000원에서 많게는 1만원까지 벌어간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이모(78)씨는 한 은행 앞에 리어카를 세워 놓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코너에서 땀을 식히고 있었다. 이씨는 “오전 6시쯤 나와 점심 먹기 전까지 일을 한다”며 “요새 날씨가 너무 덥다 보니 일을 많이 하지 못해 벌이가 줄었다. 다행히 폐지 값이 조금 올라 다행”이라고 웃음을 보였다.



서울 강서구에서 만난 정모(74)씨 부부는 “젊을 때 모아 놓은 돈을 다 까먹고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결국 이런 일 밖에 없다”며 “너무 더워 쉬고 싶어도 통장 잔고를 보면 쉽지 않다. 더워 쓰러져도 나와야 한다”고 울상을 지었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거리에서 노인이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사진=김형환 기자)
정식 시장이 아닌 노상에서 나물 등을 판매하는 노인들 역시 온열질환의 위험이 커 보였다. 이들은 그늘도 없는 맨 바닥에 신문지, 돗자리 등을 깔고 나물부터 문구, 생선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노점상이 있는 바로 앞 도로는 지열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있었다. 이 같은 폭염 속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한나절을 장사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서울 관악구에서 만난 60대 함모씨는 “여기서 이렇게 생선을 판 지 7년이 됐는데 자리를 조금만 다른 쪽으로 옮겨도 단골 손님들이 내가 장사한다는 걸 모른다. 그러다 보니 땡볕이어도 그늘로 자리를 옮기기 애매하다”며 “주변 상인들이 도와줘 찬물도 마시고 냉커피도 마시면서 버틴다”고 웃음을 지었다.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노인들도 폭염에 노출되긴 마찬가지였다. 이들 중 일부는 광고 문구가 적힌 팻말을 어깨에 메고 있어 더욱 더위에 취약해 보였다. 서울 종로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던 안모(70)씨는 “더워서 나오기 싫다가도 돈을 생각하면 안 나올 수가 없다”며 “쓰러지든 말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노인들의 폭염의 위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질 높은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인 상황에서 질 높은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며 “단순한 공공형이 아닌 4대 보험도 가입되는 사회서비스형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