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논란에 세계선수권 실격’ 여성 복서 출전에, 伊 정치권 발끈 [파리올림픽]
by이재은 기자
2024.08.01 11:28:46
“호르몬 수치 기준 일치하지 않는 것 의문”
“불공정, 잠재적으로 위험한 경기 될 수도”
IOC 측 “모든 규정 준수, 정상적으로 출전”
알제리 이마네 칼리프, 대만 린위팅 선수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성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실격 처리된 알제리의 여성 복싱 선수 이마네 칼리프(26)가 파리 올림픽에서 이탈리아 선수와 첫 대결을 하는 가운데 이탈리아 정치권이 출전 자격에 문제를 제기했다.
| 알제리의 이마네 칼리프 (사진=이마네 칼리프 SNS) |
|
안사(ANSA) 통신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치권은 지난달 31일 자국 선수인 안젤라 카리니(25)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 에우제니아 로첼라 가족부 장관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며 “국제적 차원에서 확실하고 엄격하며 통일된 기준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불공정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경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안드레아 아보디 체육부 장관도 같은 날 “유럽과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을 포함한 국제적인 레벨에서 최소 호르몬 수치에 대한 기준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포츠의 최고 무대인 올림픽에서 선수의 안전은 물론 공정한 경쟁에 대한 존중이 보장돼야 한다”며 “하지만 카리니의 내일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인프라 교통부 장관은 칼리프에 진 멕시코 선수의 경기 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뒤 “스포츠의 윤리와 올림픽의 신뢰성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이 멕시코 선수는 “펀치가 너무 아팠다”며 “13년 동안 복싱 선수로 활동하면서 남성 스파링 상대와 싸울 때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IOC는 지난해 복싱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성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실격당하거나 메달을 박탈당한 여성 복서인 칼리프와 대만의 린위팅(28)이 모든 IOC 규정을 준수했다며 올림픽에 출전한다고 지난 29일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기준은 설명하지 않았다.
이후 남자 복싱 페더급 세계 챔피언인 배리 맥기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은 충격적”이라는 글을 올리며 칼리프와 린위팅의 올림픽 출전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마크 아담스 IOC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여성 부문에 출전하는 모든 선수는 대회 자격 규정을 준수한다며 “이들은 여권에 여성으로 기재돼 있고 여성이라고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선수들은 수년간 여러 차례 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다.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알제리 올림픽 위원회(COA)는 지난달 31일 성명을 내고 “일부 외국 언론의 근거 없는 선전으로” 칼리프가 비난당하는 상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대만 올림픽 위원회는 별도의 논평을 내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칼리프와 린위팅은 지난해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복싱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국제복싱협회(IBA)의 자격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경기에서 제외된 바 있다. 칼리프는 결승전 몇 시간 전 실격 처리됐으며 린위팅은 동메달을 박탈당했다.
IBA는 선수들의 개인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는 규정 등을 이유로 구체적인 위반 사항은 성명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우마르 클레믈프 IBA 회장은 러시아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두 선수가 “DNA 검사 결과 XY염색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남성 염색체를 보유하고 있기에 여자 종목에 출전할 수 없다는 취지다.
IOC 내부망에는 지난해 세계선수권 당시 칼리프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기준치 이상으로 나왔고 린위팅은 생화학 검사 결과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IBA가 IOC로부터 자격 정지 및 승인 취소 징계를 받고 파리 올림픽에서 복싱 경기를 주관할 수 없게 되며 상황은 뒤바뀌었다. IBA가 러시아 에너지 기업인 가즈프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재정 상황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파리 올림픽 복싱 경기는 IOC가 설립한 임시 기구인 파리 복싱 유닛(PBU)이 주관하고 있으며 IOC는 지난 5월 “선수들의 준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올림픽 대회 간 일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두 선수는 2020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했으며 칼리프는 여자 66㎏급, 린위팅은 여자 57㎏급에서 활약했다. 칼리프와 린위팅은 각각 2022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한편 IOC는 출전 선수들의 성별 문제에 관해 관대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뉴질랜드의 로럴 허버드에게 출전 기회가 부여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