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또 너냐"..각국 식품값 급등 대책마련 부심
by김혜미 기자
2011.01.27 14:53:00
옥수수·밀 등 곡물가격 급등..투기세력 비난 급증
中 선물 증거금 상향 등 주요국 대책 마련 줄줄이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지난해 하반기 이후 옥수수와 밀 등 주요 곡물 가격이 두 배 이상 뛰어오르면서 또 다시 투기세력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 과도한 투기가 수급 상황을 왜곡해 가격 급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투기 목적의 상품 선물 투자를 규제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7개월간 옥수수와 밀값은 공급 경색과 수요 증가에 힘입어 두 배 가까이 급등했고, 원당은 150% 넘게 뛰어올랐다. 또 대부분의 식품 가격이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던 2008년6월 수준을 뛰어넘으면서 폭동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생겨났다.
주요국 지도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현재 식품 가격 급등에 투기세력이 상당 부분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의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올해 주요 20개국(G20) 의장을 맡게 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대표적. 사르코지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G20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를 글로벌 식품가격 안정으로 다룰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투자 여행객(investment tourists)`들로부터의 과도한 투기가 불안정한 상황을 악화시키고, 가격 변동이 펀더멘털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ANZ뱅킹 그룹에 따르면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인 미국 내 주요 선물거래소의 곡물 파생상품에 대한 순매수 투기 포지션은 지난해 11월 1억400만톤으로, 전고점인 2008년3월의 7800만톤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또 FAO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중순을 기준으로 기관 투자자들은 옥수수와 대두 포지션의 50% 이상을, 밀 포지션의 41%를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상품 무역회사인 유니팩 그레인의 치노 노부유키 회장은 현재 부셸당 8달러 정도인 미국 내 밀값은 투기세력이 가세하지 않을 경우 부셸당 6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그는 옥수수의 경우에도 현재 부셸당 6.5달러지만 5달러 정도로 떨어질 것이고, 14달러 정도인 대두값도 13.20달러로 내려갈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중국과 인도 등 인플레이션 과열에 시달리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은 이미 식품 가격 통제 조치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면화와 원당, 고무, 옥수수 선물 거래에 대한 증거금을 최고 10%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지난 13일 원유와 옥수수, 커피 등 28개 상품에 대해 선물과 옵션 규모를 제한하는 내용의 규제안을 가결했다. 2차 투표를 거쳐 규제가 실시될 경우 상품이 인도되는 달에는 포지션 한도가 전체 인도분의 25%로 제한되고, 이후에는 상품 인도시기와 관계없이 모든 계약에 대해 포지션 한도가 10%로 한정된다.
타마키 린타로 일본 재무성 국제업무담당 차관이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상품 가격 변동에 대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일본도 식품 가격 상승에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모든 정황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투기 세력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나 가격 형성에 영향을 주는 지 여부에 대해서는 측정하기 어렵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앤 버그 유엔 FAO 컨설턴트는 "투기가 시장 가격에 20~30%를 더한다는 연구를 본 적이 있지만 이는 결코 증명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선물시장에 투기세력이 존재함으로써 적절한 규모의 거래량이 유지된다는 교과서적인 이유도 투기를 완전히 근절할 수 만은 없는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