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병수 기자
2003.09.29 16:01:44
[edaily 김병수기자] 하반기부터 통증을 일으키며 앓던 이를 치료하기 위해 정부가 `규제완화`라는 문제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입장에선 자존심 구기며, 해 보겠다고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냉·온탕식 규제…, 한치 앞도 못보는 정부 정책….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 언론을 통해 비춰진 해석은 비난 일색입니다. 문제는 여기에만 있지 않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시장 참여자들의 반응도 영 시원치 않습니다. 경제부 금융팀 김병수 기자가 이번 정부의 카드 규제완화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지난주말 경제장관간담회를 통해 발표된 이번 신용카드 규제완화의 핵심은 카드사들의 부담을 완화시켜 소비를 좀 이끌어 보자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더불어 하루가 멀다하고 제기되는 실업과 신용불량자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됩니다.
카드사의 현금서비스 한도를 늘리고 연체율 관리목표도 완화해, 소비도 좀 부추기고 연체로 허덕이는 사람들의 생명도 연장시켜 보자는 게 정부의 기대목표로 보입니다. 이번 정책이 전형적인 `땜질식` 또는 다소 앞선 생각이기는 하지만 `총선용`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는 대목입니다.
먼저 현금서비스 한도를 너무 줄였다는 대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 동안 카드사들은 현금서비스 한도를 많이 줄였죠. 그래서, 신용불량자가 증가하게 된 배경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렇다면, 현금서비스 한도를 늘리면 신용불량자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 보다는 먼저 현재 카드사들이 이번 조치를 통해 현금서비스 한도를 늘리려고 하겠습니까?
이에 대한 카드사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썰렁합니다. 아직 조치들이 구체화되지 않아 속단하긴 이르나, 현금서비스 한도를 확대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의 규제 때문이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물론 현금서비스 한도를 축소하게 된 계기는 분명히 정부의 정책에서 촉발됐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아닙니다. 현재는 카드사가 살기 위해서 한도를 높일 수 없는 형국이죠. 현금서비스 한도를 늘린다는 것은 카드사들이 그 동안의 자산 구조조정 과정을 끝내고, 다시 자산 확대경영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현재의 경기상황에서 그 것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산확대 경영이 시장에서 어떻게 비춰질 지 너무나 뻔한 상황에서, 이 같은 전략적 선택을 택할 강심장 CEO는 없을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지금 현금서비스 한도를 올리겠느냐고요? 무슨 말씀 하는 겁니까? 지금도 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데, 아예 숨통을 끊을려고 하시는 겁니까?” 카드사 관계자의 이 같은 답변은 현실입니다. 숨통을 끊는다는 표현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군요.
“카드사의 숨통은 정부의 공무원들이 이것저것 해서 끊어지는 게 아닙니다. 현재 경제상황을 보면, 카드사의 숨통을 쥐고 있는 건 그야말로 시장입니다. 현 시점에서, 일부 규제완화가 있다고 해서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 한도를 올리면, 시장이 이를 곱게 보겠습니까? 속된 말로 지금 시장에 찍히면 정말 죽습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연체율 관리 목표를 현재보다 신축적으로 운용하면 소비가 살아날까요? 이에 대해서도 카드사들의 반응은 냉혹하군요.
“카드사들이 현금서비스 한도를 줄이는 데, 열심히 카드 잘 쓰는 정상적인 고객의 한도를 줄였겠습니까? 어떤 식으로든 한도가 줄어든 사람은 둘 중 하나입니다. 결제를 잘 하지 못하거나 한도를 애초부터 쓰지 않는 고객입니다. 그리고, 현금서비스 한도 올려준다고 소비할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문제 고객일 겁니다.”
카드사들의 증언이 이 정도이면, 이제 고민할 문제는 하나입니다. 카드 규제완화를 통해 소비가 위축되는 것을 막아보자는 목표는 애초부터 `하늘의 별 따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카드사들의 한도나 연체율이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경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IMF 경제위기 후 경기진작을 위해 개인소비를 부추켜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놓고 또 다시 이 `카드`를 쓰겠다는 발상부터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마침, 오늘 한 신문에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칼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김 전 수석은 칼럼에서 IMF사태 후 5년 동안 세번이나 발생한 경제후퇴 과정을 보면, 단순한 경기주기로 설명될 수 없고, 투입된 정책도구 또한 통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며 현재의 `경제후퇴`는 그간 투입된 경제정책이 자초한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제 볼 것은 신용불량자 문제입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좀 해결해, 경제주체들의 심리적인 불안감을 좀 해소해 보자는 의도로 풀이됩니다만, 이 또한 근시안적이라는 비난을 면키는 어려워 보입니다.
얼마 전, 금융감독위원회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우리나라 신용불량자 문제를 짚어 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KDI는 ▲현재의 신용불량자는 소득흐름이 없거나 불안정한 상태에서 신용카드사의 위험관리 미비로 금융시장에 편입되면서 발생했고 ▲민간기구인 신용정보집중기관이 사실상 공적기구로 운영되면서 신용불량자 문제를 푸는 데 오히려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첫째는 애초부터 금융시장에 편입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이 복합적인 요인으로 금융시장에 편입되면서 문제가 된 것이고, 둘째는 정부가 금융시스템의 인프라인 개인신용정보 관리방식을 변경해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관행의 문제점을 지적한 겁니다.
금감위가 돈을 지불하며 마련한 보고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연구기관의 결과는 무시되는 인상이 짙습니다. 물론, 정부는 이들 연구기관들의 분석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항변할 지는 모르겠으나, 이럴 것이라면 뭐 하러 이런 작업들을 하는 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규제완화라는 것이 늘 그렇듯 해당 카드사들에게는 플러스 요인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 규제완화를 계기로 연체율 문제로 정말 곤란을 겪던 일부 카드사는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일부에서는 당초 올해 말까지 설정해놨던, 부실채권 상각이나 ABS발행을 통한 연체채권 매각을 미뤄도 된다는 생각이 카드사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카드사들은 그 동안 연체율 관리 목표에 걸려 헐값으로 매각해 왔던 부실채권을 좀 더 두면서 자체적으로 회수율이 높아질 수 있게 됐다고 반기는 눈치입니다. 이 것도 앞으로 경기가 좀 나아져서 소비자들의 소득흐름이 정상화된다는 전제가 필요한 것이기는 합니다. 또한 규제완화가 일부 됐다고 해서 이를 연기할 경우 시장의 평가가 이를 용인할 지도 두고볼 문제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카드 규제완화를 통해 소비위축을 좀 막아보자는 정부의 목표는 달성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입니다. 또 카드사들의 부실채권 매각 속도는 다소 늦춰질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냉엄한 평가가 기다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IMF 경제위기 후 공무원들도 시장경제와 투명성을 누구보다 소리높혀 외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말 한마디면 뭔가 될 것이라는 착각에 싸여 있다”고 꼬집더군요. 지난 주말 간담회의 카드 해법 제시 후, 시장에서 떠도는 `벌써 총선용 정책인가`라는 곱지 않은 해석이 정말 아니기를 기대해 볼 수밖에 없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