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조진형 기자
2006.01.12 20:15:45
[이데일리 조진형기자] 당당한 황우석 교수를 보면서 국민들은 또 어리둥절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할말 없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국민들이 되레 할말이 없어졌습니다. 12일 기자회견에서 미즈메디병원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면서 사태는 또 미궁으로 빠져든 느낌입니다. 증권부 조진형 기자는 황우석 사태를 둘러싼 국민의 감정 대립은 이념 논쟁보다 더욱 소모적이라고 우려합니다.
황우석 교수의 말은 언제들어도 매끄럽습니다. 이날도 당당했습니다.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줄기세포는 모두 거짓"이라는 최종보고서를 발표한지 이틀만의 일입니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학문적 범죄행위"라고 밝힌 것이 바로 어제였습니다.
소위 `12·15 사태` 이후 황교수가 행여 잠적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국민들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말이죠.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황교수의 주장에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국민들도 꽤 있었습니다. 배신감을 억누르지 못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황 교수의 퇴장에 박수와 욕설이 동시에 터져나왔다는 상황이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봉합되는 듯 했던 국민 여론이 또 갈라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황빠`(황우석교수를 지지하는 측)와 `황까`(황우석교수를 반대하는 측)라고 한다지요.
현 상황은 지난 대선 때 불튀겼던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을 연상하게 합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마음이 됐던 것도 잠시, 대선을 앞두고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었죠.
최근 '황우석 논쟁'에서 벌어진 국민들간 혈투는 이보다 더 심한 상황입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쉽게 수긍이 가실겁니다.
문제는 대립의 명분입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보수와 이념의 대립은 민주주의 발전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와 경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대안이 방법론적으로 달랐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민주주의 풍토가 한발 진전했다는 데 큰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황우석 논쟁은 어떻습니까. 뚜렷한 명분이 없습니다. 다만 황우석 교수가 거짓말을 하느냐, 노성일 이사장이 거짓말을 하느냐. 만나는 사람들마다 누가 더 나쁘다고 설전을 벌이며 언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16일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의 진실게임이 벌어졌을 때만해도 희미하게나마 명분은 있었습니다. 줄기세포가 있느냐 없느냐가 논쟁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발상이긴 하지만 이는 `국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진실에 대한 욕구도 매우 컸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배아줄기세포는 아직 누구의 조작인지는 확실치 않아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황 교수가 미즈메디병원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지만 국민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황우석 교수가 맞느냐, 노성일 이사장이 맞느냐는 의미가 없고 누구 잘못이 더 크냐는 더욱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민들은 이제 그들의 진실게임에 동참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완으로 남은 진실은 검찰에 맡기면 됩니다. 소모적인 논쟁이 심화된다면, 검찰 수사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그 논쟁은 지속되고 국민이 받은 상처는 덧나게 됩니다.
이제는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내 생명과학계의 발전 방향을 위한 방향으로 논쟁을 벌여야할 시점입니다. 배아줄기세포가 조금 늦게 만들어져서 입는 국가손실보다 소모적인 국민 분열이 더 지속될 때의 국가손실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더 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