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vs 환율‥정부 정책 중대 기로

by김병수 기자
2004.04.01 15:46:04

[edaily 김병수기자] 정부의 물가·환율정책이 기로에 섰다. 어제(31일) 저녁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유지 결정과 오늘 아침의 3월 소비자물가동향 발표, 사상최대치를 경신한 수출실적과 최근의 엔고 등 각종 재료가 어우러지면서 정부의 정책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여전히 낙관적인 유가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고유가 장기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는 결국 치솟고 있는 소비자물가에 기름을 부을 게 뻔하다. 정부는 매달 사상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수출이 우리 경제의 `희망`이라고 역설하고 있지만, 고용을 창출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의 실제소득을 올려야 하는 현실론과는 거리가 있다. ◆ 치솟는 물가와 OPEC의 살벌한 게임 OPEC은 31일 저녁 결국 감산유지를 결정했다. 2분기 이후 수요 감소에 의한 유가하락을 우려한 OPEC 내 `매파`의 강공 드라이브가 먹혀든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에서는 이로 인해 유가가 4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으로 일관하고 있다. 산자부는 이날 공식입장을 통해 `일시적으로 유가상승이 있을 지 모르나, 돌발요인이 없다면 2분기 유가는 당초 예상대로 26~28달러의 안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유가등락 변수로는 ▲세계 경제 및 석유수요의 회복 ▲이라크의 수출회복 ▲비OPEC의 증산 및 OPEC의 시장대응 ▲미국의 상업용 석유재고 ▲중동정세와 베네수엘라 등 정정불안 ▲투기자금의 동향 및 달러화 약세 지속여부 등 6가지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낙관적인 유가전망은 최근 연일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참고 ☞고유가 지속 전망 `힘 실린다`) 이헌재 경제부총리 조차도 정부의 컨틴전시플랜의 비효율성을 언급하고 고유가 시대에 대비한 비상계획 마련을 지시한 상태다. 정부는 1일 `에너지다소비 사업장 절약강화대책`을 발표하고, 고유가에 대응한 내국세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민간부문에선 즉각적인 대응보다는 유가상승분을 시장이 결정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고 정부 관계자는 설명하고 있다.(참고 ☞"고유가 충격 시장서 흡수 지켜보자") 내일(2일) 정부는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유가 문제 등을 집중 논의할 예정이나 얼마나 진전된 대책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소비자물가는 치솟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는 전월대비 1.0%나 올랐다. 전월대비로 1년만에(2003년 3월 1.2% 이후) 최고치다. 전년동월비와 전년동기비도 3.1%와 3.3%다. 작년 3월 물가가 이라크전의 영향으로 큰 폭으로 올랐던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물가상승률은 지표와 달리 상당한 수준의 고공행진이다.(참고 ☞3월 물가 1.0%급등..1년래 최고) 정부 해석은 3월 납입금 등 서비스요금의 영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다. 향후 전망과 관련해서도 작년과 달리 공공요금이 더 이상 오를 게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전년동월비 및 전년동기비 수치가 작년 3월 큰 폭의 물가상승에 따른 베이스 이펙트(base effect) 효과라는 점을 무시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무엇보다 고유가가 물가에 미칠 영향이 걱정이다. 현재와 같은 고유가 추세가 작년말부터 본격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빠르면 내달부터는 소비자물가를 통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대략 유가상승분이 생산자물가를 거쳐 소비자물가까지 파급되는데는 대략 3개월에서 4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한국은행은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경우 소비자물가가 0.15%가량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유가전망이 우리 정부의 기대치를 벗어난다면 이것이 물가에 미칠 파급효과는 상상을 넘어설 수도 있다. 지난 달 11일 한국은행이 아닌 정부의 물가대책 차관회의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통화·재정 등 거시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해 물가안정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힌 이유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정도다.(참고 ☞물가대책 차관회의 발표문..해석 분분) ◆ 경제의 희망 `수출` vs 먹고 살 걱정 `고용` 3월중 수출은 다시 월간기준 사상최대치을 기록했다. 월 200억달러를 돌파했다. 무역수지도 23.9억달러의 흑자를 기록, 12개월 연속 흑자기조를 이어갔다. 3월까지 누적흑자는 72.1억달러다. 고유가와 원자재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2분기 이후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기도 하지만, 수출 호조의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정부와 산업계가 수출에 거는 기대는 어느 때보다 크다. 수출 양극화가 문제기는 하지만 대기업의 수출 호조가 내수 회복과 고용창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원론적인 해석에 따른 것이다. 청년실업을 비롯해 신용불량자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정부로서는 어느 때보다 고용정책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헌재 부총리도 항상 "정부의 경제정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정책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양극화된 수출구조가 얼마나 고용으로 이어질 지 예상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부가 수출경쟁력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환율을 동원하고 있는 가운데, 환율하락이 수출확대를 주도하고 있는 대기업에 미칠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 당국자들도 "환율이 수출경쟁력과 관계를 맺는 것은 대기업보단 중소기업이고, 특히 이들 중소 수출기업이 고용에 더 많은 기여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세계적인 내수회복 정책, 결국 환율인가 그러나 현재의 국면은 이 같은 중소 수출업체를 통한 고용확대 조차도 배부른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전 세계 각국들이 내수회복 정책으로 돌아서고, 가까운 일본마저도 강한 내수회복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는 외신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마침 달러/엔은 110엔대에서 움직이다 지난달 중순께부터 100엔대에 진입해 오늘 3시15분 현재 104.14엔대를 기록하고 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고용에 기여하는 것이 큰 만큼, 고용과 내수회복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업종이 유통 등 전형적인 내수업종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이들이 환율상승으로 인해 얻을 혜택은 거의 없다. 일본의 강한 내수회복 정책 관측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엔화에 영향을 더 받는 원화의 경우도 어제(3월 31일) 1150원대에서 1140원대로 레벨을 떨어뜨렸다. 오늘 3시 15분 현재 달러/원은 1141.70원대까지 밀리고 있다. 정부는 이처럼 급격하게 환율이 하락하자 다시 방어 의지를 밝히기 시작했다.(참고 ☞재경부, 외환시장 개입 강화 시사) "아직 수급이 균형을 이루고 있기는 하나, 달러/엔 하락 영향으로, 시장심리가 취약해진다면 외환시장안정용 국고채 발행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재경부는 어제 오후만 해도 4월 국채발행계획을 통해 `환시용 국고채는 시장상황에 따라 발행여부·발행액 및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며 평이한 코멘트를 내놓았다. 지난달 22일 내외신 기자들을 만난 최중경 국제금융국장은 "외환시장 수급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4월에도 외환시장안정용 국고채를 발행하지 않고 환율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었다. 오늘 당국의 외환시장 구두개입은 이틀새 13원이상 빠진 급등락에 따른 것이고, 아직 환율정책의 변화를 얘기할만한 뚜렷한 증거도 없기는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가 현재의 환율정책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도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이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