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의사는 왜 가운을 벗었나…美 의료계 코로나發 '번아웃' 확산
by조민정 기자
2020.11.17 11:01:38
본인·가족 건강 위해 이직하거나 조기 은퇴
코로나 장기화, PTSD 등 정신적 피해 커져
소형병원 재정난 심각…환자 방문 15% 낮아
[이데일리 조민정 인턴기자] 미국 의사인 켈리 맥그레고리씨(Kelly McGregory·49)는 2년 전 부푼 꿈을 안고 미네소타주(州) 미니애폴리스 외곽에 소아과를 개원했다. 친절함과 능력을 겸비한 덕에 입소문을 탄 소아과는 규모를 키워갔다.
행복한 생활도 잠시, 올해 초 코로나19가 미 전역을 강타하면서 맥그레고리씨의 삶은 급변했다.
의료용 마스크가 단 3개밖에 남지 않는 등 부족한 보호장비에 환자를 안전하게 진료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이 커졌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내기 시작했다.
맥그레고리씨는 15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매우 끔찍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소아과를 계속 운영하기 위해 원격의료를 실시하긴 했지만 실제로 대규모 병원에서 하는 진료를 모두 대체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개원 2년 만에 병원 문을 닫는 어려운 결심을 내렸다. 남편이 다른 주에서 새 직장을 구한 점이 영향을 미쳤지만, 무엇보다 코로나19 환자들과 접촉을 이어가다 보니, 환자 걱정, 아이 걱정 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스스로를 번아웃(무기력증) 상태라고 표현했다. 결국, 의사가운까지 벗었다.
NYT는 맥그레고리씨 사례처럼 의사·간호사를 포함한 미국의 의료진들이 조기 은퇴하거나 아예 관두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의학협회 회장인 수잔 베일리 박사는 “일부 의사들은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면서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받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발병을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 건강을 위해 은퇴를 결정한 마취과 의사인 조안 벤카는 NYT에 “솔직히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난 계속 일하고 있을 것”이라며 “은퇴는 내 인생 계획은 아니었다. 내 경력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재정적 어려움은 의료진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 추가 부양책 불발로 지난 9월 중소기업에 대한 무담보 대출을 골자로 한 신설 급여보호 프로그램(PPP)이 중단된 탓이다. 여기에 환자 방문율도 코로나 이전보다 15%가량 낮다. 장갑이나 마스크 같은 기본적인 의료보호장비를 구매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베일리 박사는 “대형병원은 잘 구축된 개인보호장비(PPE) 제도로 탄탄한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소규모 병원은 안정적인 재원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