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정민 기자
2012.03.19 17:09:50
[이데일리 김정민 기자] 이석채 KT 회장이 2기 임기를 시작하는 첫날, 휴대폰 제조사들을 상대로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소비자의 통신비 부담이 늘어난 이유가 단말기 가격이 해외보다 40~50%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발언은 지난 16일 공정위 발표와 맞물려 묘한 여운을 남긴다. 공정위는 휴대폰 통신사와 제조사가 공모해, 휴대폰 가격을 정상가보다 높게 책정한 후 마치 할인해 주는 양 소비자를 속이는 수법으로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이유로 삼성전자 142억8000만원, LG전자 21억8000만원, 팬택 5억원 등 제조사에게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물론 SK텔레콤 202억5000만원, KT 51억4000만원, LG유플러스 29억8000만원 등 통신사에도 벌금을 물렸다.
관련업계에서는 단말기 제조사와 함께 과징금을 부과받은 통신사의 수장이 제조사의 가격 부풀리기 문제를 거론하고 나선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정위 제재에 대한 책임전가부터, 과거 삼성전자와 쌓아온 악연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다앙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장은 비싼 통신 요금에 대한 책임을 단말기 제조사로 돌렸다. 통신사는 수익성이 악화될 정도로 요금을 낮췄지만 단말기 가격이 워낙 비싸 소비자들이 요금인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특히 해외에 비해 월등히 비싼 가격에 단말기를 공급하는 제조사들 때문에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 회장은 “제조사들이 다른 나라에서 유통되는 값으로 (국내에서도) 판다면 국민 부담이 확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수치도 언급했다. 그는 “국내 통신요금은 해외보다 싸지만 국내 제조사들이 단말기 공급가격이 해외에 비해 40~50% 가까이 비싸다”라고 강조했다.
이 수치는 지난주말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조사의 공급가 부풀리기 행태를 공개하며 언급한 사례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A사의 한 모델은 국내 통신 3사에 평균 56만8000원에 공급되지만 해외 40개국 83개 통신사에는 평균 25만5000원에 공급되고 있다고 밝혔다. 가격 편차가 31만3000원으로 국내 통신사들이 55%나 비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받고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이 회장은 구매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이통사 판매점의 잘못된 관행 역시 소비자가 통신요금을 비싸게 느끼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KT가 페어 프라이스(공정가격)제를 도입한 이후 경쟁사의 고객 빼가기로 일부 고객이 이탈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KT의 단말기 판매가격이 노출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경쟁사로 이탈하는 고객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 차단 사태와 관련해서도 독설을 이어갔다. 그는 통신망을 전력망에 비유해 “누군가 특별한 기기 때문에 전력을 내 마음대로 쓴다면 말이 되겠냐”며 “통신망도 전력망과 같이 투자자와 사용자의 돈으로 만든 희소자원인 만큼 공짜로 쓰게 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직접 겨냥해 “스마트TV는 통신망이 연결돼 있지 않으면 그냥 값비싼 TV일 뿐”이라며 “국내에서 공짜로 썼다고 해외에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비난했다.
이처럼 이 회장이 작심하고 삼성전자에 대한 비난을 쏟아낸 것은 2009년 아이폰 도입 당시부터 쌓인 오랜 악연이 영향을 미친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 회장은 이날 “아이폰 도입 당시 배신자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아이폰 도입에 앞장선 KT에 대해 자사 단말기 공급가격을 높이는 등 보복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