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기업, 대출수요 5년래 최저..체감경기 바닥

by강종구 기자
2003.06.12 16:56:18

[edaily 강종구기자] 미국의 은행 대출 금리가 사상 초유의 낮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여전히 은행 대출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경기회복 기대가 높아지고 주가 또한 상승하면서 소비심리도 살아나고 있지만 정작 경제성장의 주역인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바닥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5월 마지막 주 은행들의 대출실적은 9318억달러에 그쳐 지난 1998년 9월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은행의 대출금리가 날이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은행 문턱은 더욱 한산해 졌다. 지난 2월 기준으로 미국 은행들의 기업대출 평균 금리는 연 3.20%로 FRB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6년 이래 가장 낮다. 대출금리는 2001년 2월 7%를 상회했으나 지난 해 2월에는 4% 미만으로 떨어졌고 올 들어서는 3%대 초반으로 더욱 내려왔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대출을 꺼린다는 것은 당분간 고용을 늘릴 계획이 없거나 투자를 확대할 생각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기업의 투자침체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선임 이코노미스트 빌 설리반은 보고서에서 “기업들은 낮은 금리수준에도 불구하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를 꺼리고 있다”며 ”수 분기내에 경제가 현격히 좋아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 증거”라고 말했다. 경기사이클연구소(ECRI)의 이코노미스트 애너번 배너지에 따르면 기업의 대출활동은 기업 투자수요의 선행지표로 활용된다. 기업투자는 또 “3C”(현금, 신뢰, 설비)가 좌우한다. 배너지는 기업의 현금사정이 나쁘지 않다고 설명했다. 금리가 낮아지고 정부의 세금감면에 실적까지 호전되면서 기업들의 주머니사정이 나아졌다는 것이다. 이라크전쟁이 끝난 후 불확실성이 가시면서 기업신뢰도 다소 개선됐다. 낙관하지 못할 뿐이지 두려워하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의 차입과 투자를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설비. 현 수준으로서도 과잉수준이라는 지적이다. 1990년대 후반 “광란”이라고 할만큼 투자를 늘리는 바람에 너무 많은 설비를 보유하게 됐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기업들이 은행에 손을 내밀거나 투자를 확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배너지와 다른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배너지는 “기업투자를 자극할 만한 모멘텀이 아직은 없다”며 “말을 물가에 끌고 갈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너지는 또 연말까지는 기업투자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비관적인 전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돈을 꾸기 위해 서둘러 은행에 달려가게 될 가능성도 있다.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고 판단되면 기업들은 우선 재고를 늘리기 위해 은행에 단기대출을 신청할 수도 있다. 드레스드너클라인보르트바서스타인(DKW)의 선임 이코노미스트 케빈 로간은 올해 큰 폭은 아니지만 기업들의 은행대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로간은 “경기가 살아나고 기업들이 재고를 늘릴 필요가 생기면 대출은 늘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