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재난, 그의 그림처럼 아름다울 수만 있다면
by오현주 기자
2022.11.02 14:10:49
△사비나미술관서 개인전 연 작가 홍순명
재난 내건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
호주산불·부산태풍·9.11 등 모티프
보도사진 일부 100여조각 자른 뒤
한조각씩, 퍼즐 맞추듯 전체 완성
자연·가족 소재로 제작한 68점 중
10m 규모 '재난 연작' 10여점 걸어
| 작가 홍순명이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에 건 작품 ‘불’(2022·300×1200㎝) 앞에 섰다. 3년 전 호주에서 난 대형산불을 모티프로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 몰려든 거대한 파도를 그린 작품은, 주역이 아닌 조역에 주목하는 ‘사이드스케이프’를 주제어로 삼아온 작가의 ‘재난 연작’ 중 한 점이다. 50×60㎝ 크기의 캔버스 120개를 조합해 대작으로 완성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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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지독한 역설이 아닌가. 잔뜩 움츠러들어야 할 이 전경 앞에서 감탄을 쏟아내고 있으니. 빨려 들어갈 듯한, 아니 자진해서 빠져들고 싶은 탐나는 색감이 그 처음이다. 타오르는 듯 붉고, 녹아내릴 듯 노랗고, 엉겨감길 듯 희뿌연 잿빛이 끝없이 펼쳐졌다. 게다가 압도적인 크기는 또 어떤가. 10m를 훌쩍훌쩍 넘기는 폭도 모자라 3m 높이는 이미 넘볼 수 없는 경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광경이다.
그런데 말이다. 무한한 경외감도 부족한 이 장면이, 넋 놓고 들여다보기에 턱이 빠질 듯한 이 풍경이 ‘재난’의 일부란다. 대형 산불이고, 산 같은 파도며, 빌딩을 무너뜨린 연기라니까. 세상일이란 게 아무리 손바닥 뒤집기고 동전의 앞·뒷면이라지만 과연 이래도 되는 건가. 재난이란 게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는 건가 말이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는 재난을 그렸다는 그림을 앞에 두고 ‘아름답다’는 감정을 꺼내놔도 되는 건가 말이다.
| 사비나미술관 홍순명 개인전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 전경. 관람객들이 홍 작가의 ‘재난 연작’을 둘러보고 있다. 앞쪽으로 ‘붉은 남쪽 바다’(2018·250×424㎝)의 전체가, 뒤로는 ‘불’(2022·300×1200㎝)의 부분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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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잡한 감정에서 어느 쪽을 택하지 못하고 망설일 무렵, 그이와 마주쳤다. 거대한 작품만큼 거대한 혼돈을 꺼내놓은 작가 홍순명(63)이다. “고통을 안고 있는 아름다움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다. 예술은, 그림은 내가 발붙이고 있는 현실을 토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현실 위 영혼을 들여다보는 형이상학적 지향도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결국 그이가 꺼내놓은 ‘재난 연작’은 현실과 지향, 그 둘의 낯설지만 진지한 만남이었단 얘기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 펼쳐낸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 전. 홍 작가가 2년 만에 연 개인전에 건 총 68점 중 ‘재난 연작’ 10여점은 그만큼 독보적이다. 그저 그림만으로 채운 게 아니니까. 그림보다 더한 철학도 걸고 세웠으니까. 웬만한 내공과 배포가 없다면 섣불리 꺼내놓기도 힘든 ‘재난의 미학’ ‘역설의 파편’이 즐비하다.
| 홍순명의 ‘비스듬한 기억-바다Ⅰ’(2022·259×193㎝). ‘세월호 사건’을 모티프로 한 두 작품 중 하나다. 세월호 이후 바다는 홍 작가에게 공포든, 공포보다 더한 아름다움이든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던 듯 보인다. 조각으로 작업하지 않은 캔버스 작품이기도 하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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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돌아왔다. 이토록 장대한 붓질과 붓선이 휘몰아치지만, 홍 작가는 오롯이 ‘화가’로서의 인생을 살진 않았단 뜻이다. 시작은 ‘석판화’라고 해두자. 뜻한 바 있어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날 때의 전공이 그랬다니까. 물론 많이 배웠다. 다만 그 시절, 파리의 명문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 이거다. “석판화를 해선 뜰 수가 없겠구나.”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훌륭한 공방도 많고, 기량이 뛰어난 작가는 더 많았다. 하지만 시장이 결정하는 작품은 공방도, 작가도 아니더란 걸 목도한 뒤다. “10배가 넘게 차이가 나는 판화의 작품가는 결국 작품이 아닌 작가의 유명세를 따라가더라.”
| 사비나미술관 홍순명 개인전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 전경. 한 무리의 관람객이 홍 작가의 ‘재난 연작’ 중 한 점인 ‘바다-태풍’(2021·300×840㎝)을 오래 둘러봤다. 그 옆으로 9·11테러를 모티프로 삼은 ‘풍경-아이러니Ⅰ’(2022·300×1080㎝)이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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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석판화 작업에서 흥미를 잃은 건 분명했다. 자꾸 다른 길이 보였다니까. 귀국한 뒤 그 자리를 대신한 게 설치작품이었단다. “손 놀리는 걸 좋아하고, 구상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10년을 설치작품에만 매달렸다. 그동안 그림은 싹 잊었다. 선 하나 긋지 않고 살았다고 했으니. 그이를 ‘설치하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건 당시의 작업 덕이다. 오죽했으면 포털사이트 창에 이름을 붙여봐도 말이다. 단박에 ‘설치미술가’란 타이틀이 뜰 정도니까. 하지만 이것도 아니었나 보다. “10년을 넘기고 나니 그제야 ‘이 길도 아니구나’ 했다는 거다. 멋진 옷을 차려 입었는데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덥석 붓을 잡기엔 영 껄끄러웠다고 했다. 굳이 그이가 붓 쥐기를 피한 까닭을 찾자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 중에선 못 그리는 편이라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 있던 상태였다”는 거다.
| 홍순명의 ‘풍경-호수’(2022·162×355㎝). 엄청난 비가 쏟아져 다 잠겨버렸을 어느 평지에, 머리만 드러낸 나무들을 마치 평화로운 ‘호수’의 풍경처럼 묘사했다. ‘재난의 역설’은 홍 작가 작업의 핵심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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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의 ‘끝물’이던 1990년대 중·후반 흙판에 물로 그리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 역시 그림보단 설치에 가까웠다. “전시장에서 오픈 전날 밤새도록 작업해야 하는” 특수성이 도드라진. 물기가 사라지면 없어질 작품이니까.
그렇게 붓을 세워두고 곁만 빙빙 도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인 2002년. 결국 마흔셋에 제대로 붓을 잡았단다. “오기가 생겼다. 그래도 처음부터 대작은 할 수 없고 작게 시작하자 했다. 0호인 엽서크기의 캔버스 1000개를 주문해 하나씩 채워나가는 식으로.”
그렇게 3000개의 캔버스를 남겼다. 다시 10년을 매달린 결과다. 홍 작가를 가름할 테마 ‘사이드스케이프’(Sidescape)를 낳은 모태라고 할까. 번역하자면 ‘옆모습’쯤 될 ‘사이드스케이프’를 ‘홍순명 식’으로 풀어내면 이거다. ‘비켜난 풍경’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 그래서 ‘다른 시선으로, 달리 바라봐야 할 풍경’.
| 작가 홍순명이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에 건 작품 ‘바다-태풍’(2021·300×840㎝) 앞에 섰다.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 몰려든 거대한 파도를 그린 작품은, 주역이 아닌 조역에 주목하는 ‘사이드스케이프’를 주제어로 삼아온 작가의 ‘재난 연작’ 중 한 점이다. 50×100㎝ 크기의 캔버스 84개를 조합해 대작으로 완성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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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생각하듯 뒤집어보기, 비틀어보기와는 다르다고 했다. 중심을 벗어난 주변을 조명하는 일이라니까. 다시 말해 언제까지라도 보조로만 존재했을 그 ‘사이드’를 들여다보는 일이란 거다. “재난, 특히 자연재난이란 게 말이다. 솔직히 인간 삶을 중심으로 놓고 볼 때만 재난인 거다. 보슬비가 과하면 홍수가 되는 공식을 따라서 말이다. 하지만 지구입장에선 비가 좀 덜 오든 더 오든 별문제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작가에게 ‘지구가 아프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단다. 그저 ‘인간이 아플 뿐’이니.
그래 맞다. 재난을 주제로 한 홍 작가의 작품에서 ‘아름다움’ 운운할 수 있었던 건 말이다. 최소한 그림 속엔 사람을 두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이의 철학대로 “인간이 빠지면 그저 사이드 현상일 뿐인” 3년 전 호주에서 난 대형산불을 모티프로 한 ‘불’(2022·300×1200㎝)이 나왔다. 또 부산 해운대 앞바다에 몰려든 거대한 파도(‘바다-태풍’ 2021·300×840㎝)를, 9·11테러가 삼켜버린 빌딩에 고인 연기(‘풍경-아이러니Ⅰ’ 2022·300×1080㎝)를 담아냈다.
| 사비나미술관 홍순명 개인전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 전경. 한 관람객이 홍 작가의 ‘재난 연작’ 중 한 점인 ‘풍경-아이러니Ⅰ’(2022·300×1080㎝) 앞에 오래 머물렀다. 그 오른쪽 옆으로 ‘불풍경’(2020·194×259㎝)이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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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작품이 여느 ‘큰 그림’과 다른 점도 짚어야 한다. 이미 세상에 나왔던 재난보도사진을 골라 어느 ‘사이드’에 집중한 뒤 다시 100∼120조각으로 잘라낸다. 이미 정상적인 형체는 사라진 그 장면을 이후 한 조각씩, 마치 퍼즐을 맞춰나가듯 전체를 완성하는 식인 거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오기로 붓을 잡았다는, 20년 전 이미 했던 ‘엽서 크기의 3000여점’ 말이다. 그래도 그렇지. 굳이 그렇게? “예술은 현실을 놓치지 말아야 할 거 같아 구상을 토대로 한다. 그 위에 디테일보단, 회화가 가진 본질을 얹어내는 거다. 색과 느낌을 옮겨 놓는다고 할까.”
작업을 하면서도 이들 전경이 마지막이란 생각은 결코 하지 않았을 거다. 그저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풍경을 기대했으려나. 그이가 그린 재난은 이처럼 아름답거늘, 어쩌겠나. 현실의 재난은 결코 아름답지가 않다. 전시는 2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