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기훈 기자
2012.12.03 16:39:00
[이동훈 동아제약 전무] 1904년 초 일본의 중국 여순항 공격을 시작으로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러일전쟁이 시작된다. 러시아 함대는 인천 앞바다에서 일본군에 의해 침몰됐고 고종은 중립을 선언했지만 한반도는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전쟁터로 전락하고 만다. 당시 고종은 아관파천에서도 보여주었듯이 일본과 러시아 중 러시아의 국력이 더 강하다 판단하고 러시아에 상당히 기울어져 있던 차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1905년 일본군의 승리로 전쟁은 끝난다.
전쟁 직후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배상과 책임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포츠머스 강화회담이 미국에서 열린다. 그런데 미국은 일본과 사전에 태프트 밀약을 통해 필리핀과 한국을 나눠 차지하기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그 밀약은 1924년까지 극비로 있다가 공개됐는데 일명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결국 러일전쟁은 미국과 일본이 한국과 필리핀을 서로 나눠 차지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포츠머스 강화회담에서 논의한 것은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만주에 대한 권리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 오느냐였다.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중국 여순 및 대련의 조차권뿐만 아니라 사할린까지 넘겨받았다. 이러한 거래가 이뤄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프랭클린 D. 루즈벨트였고, 그는 포츠머스 강화회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문제는 그 당시에 고종과 그 측근들이 보여준 행동이다. 이미 미국과 일본은 밀약을 통해서 한반도와 필리핀군도를 나눠 먹기로 결론을 내린 상태이고 독일, 영국 등도 이미 열강들 사이의 나눠 가지기를 인정한 상태인데 뒷북을 치듯 이 나라 저 나라에 친서를 보내는 노력을 했다. 그야말로 국제정세에 어둡다고 해도 심하게 어두웠다고 볼 수 있다. 포츠머스 강화회담 직후 고종은 미국인 헐버트를 통해서 루즈벨트에게 밀서를 보내고, 이용익을 통해 러시아의 람스도르프에게 한국의 보호를 요청하고, 영국 기자 스토리를 통해 중국에 있는 영국 공사에게 열강의 보호를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열강들 사이에서는 합의와 추인이 끝난 후였으니 어떠한 성과도 얻어낼 수는 없었다. 그러한 시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거라고 생각은 든다. 하지만 답답한 것은 당시 고종을 포함한 측근들이 얼마나 국제정세의 파악과 이해에 어두웠느냐다.
한반도의 왕조나 정권의 교체는 중국 왕조의 교체시기와 맞물려 왔다. 중국의 한나라가 아시아의 중심적 국가로 등장한 이후 중국 내지의 왕조가 교체될 때마다 주변국들은 혼란과 불안을 겪어야 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변하던 시기에 한반도에서는 백제와 고구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고려와 조선의 건국시기도 중국의 왕조가 변하던 때와 시기를 같이 한다. 원에서 명으로 왕조가 교체되던 시기에 고려에서 조선으로 한반도의 정권도 변하게 된다. 같은 의미로 일제강점을 지나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탄생할 시점에도 중국 대륙의 청나라와 러시아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일본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며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새로이 시작하는 것을 보더라도 역사적 맥락은 동일한 반복을 하고 있다. 같은 논리로 생각을 해보면 한반도에서의 남북통일은 어떻게 보면 현대 중국의 변화 (또는 혼란)와 그 주변의 강대국인 러시아, 일본, 미국의 판도 변화에 따라 이뤄질 것은 당연한 사실 같다.
올해는 각국에서의 선거가 한창인 해다. 미국에서도 대선이 치러졌고 우리나라에서도 대선이 치러질 전망이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로 지도체제가 바뀌어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전 세계는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기 이어지면서 경제적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의 거시경제적 방향성과 국제정치적 방향성이 더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라 보이고 100년 전 고종이 보여줬던 국제정세에 대한 무식함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더는 없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